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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래빗 Feb 03. 2021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나는 음식을 고르는 데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배고프면 뭐라도 먹는 편이지 끼니를 바지런히 챙겨 먹는 타입이 아니다. 가끔 어린 시절 먹던 경상도 음식이 그리워 찾을 때는 있지만, 맛깔스러운 무언가를 찾아 소비하고 다닐 만큼 낭만적이지도 않는 편이기도 하고.


그런 내가 요리 에세이에 꽂혔다.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이 책의 저자 문정훈 교수님은 매일경제신문 칼럼을 통해 성함을 익혔고, 장준우 셰프님은 브런치에서 워낙 유명하셔서 구독 중이었다. 두 분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음식의 문화와 역사, 식재료에 대해 전문적이면서도 친근한 문체로 글을 써주셔서 예전부터 팬이었다.


사실 교수님과 셰프님이 서로 아는 사이에서 1차 놀랐고, 두 분이 책을 같이 내신다는 것에서 2차로 놀랐으며, 책 주제가 내가 동경하는 프랑스 남부 요리 여행이라 해서 마지막 한 번 더 놀랐다. 이건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책이지 뭐. 글은 문정훈 교수님이 쓰셨고, 사진은 장준우 셰프님이 담당하셨다. 음식 사진은 셰프의 손길이 닿았으니 당연 베테랑급이었고, 여행 에세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지면 곳곳에서 프랑스 남부 여행자의 시선이 느껴진다는 것도 이내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프랑스 하면 파리다. 그러나 교수님은 프랑스에서 파리가 가장 덜 아름답다 하셨다. 파리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철도체계 잘 돼있으니 시골로 향하라고. 거기서는 차를 렌트해야 제대로 시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 분들은 지역을 여행하시며 산지의 식재료와 셰프들을 만나 다양한 의견을 나누시고 교감하신 바를 쉽고 솔직하게 표현하셨다. 특히, 교수님의 문체는 거의 옆에서 툭툭 설명해주는 거 같아서 읽기가 매우 편했다. 지금부터 책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만 발췌해서 느낌을 적어보려 한다.

part1. 부르고뉴_ 마콩, 브레스, 코트 도르, 보졸레


"이 커다란 바위는 이 지역 포도밭에서 재배하는 포도의 특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지역 포도로 담근 와인에서는 바위 맛이 나고, 바위 덩어리에 반사되어 포도밭을 비추는 태양의 손결이 느껴진다."

→ 어떻게 와인에서 바위 맛이 날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매일 아침 포도밭 사이를 말처럼 뛰어다닐 것이고, 매일 해가 질 무렵에 이 훌륭한 베세울의 레스토랑에서 돼지처럼 식사를 할 것이다. 식사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아 더욱 매력적인 곳. 그러나 나도 모르게 와인을 과음하게 되고, 다음날 식사보다 훨씬 비싼 술값을 확인하면서 마치 와이파이를 잃은 한국인처럼 슬퍼하는 곳"

→  샤토 드 베세울이라는 와이너리(호텔, 레스토랑 겸)가 무척 마음에 드셨나 보다.


"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다리살과 가슴살을 동시에 맛있게 요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에요. 지금도 고민 중이죠. 잘 알겠지만 닭다리에는 뼈가 있고, 다리뼈는 열전도율이 매우 떨어지죠. 그래서 다리를 가슴살과 함께 조리하면 가슴살이 언제나 먼저 익게 되니 수분이 빠져나가 뻑뻑해집니다. 그렇다고 가슴살에 타이밍을 맞추면 다리가 덜 익어버리는 문제가 있죠. (중략) 그러나 고객은 각 부위가 다 붙어 있는 한 마리 닭은 원해요."

→  닭가슴살은 원래 뻑뻑한 게 아니었다니!! 프랑스의 대표 브레스 토종닭을 두고 (노년의) 천재 셰프 조르주 블랑의 고민이라 했다.  토종닭은 그냥 물에 빠뜨려 끓여 먹는 백숙 문화를 가진 우리 입장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책에서는 몇 가지 방법의 솔루션이 나와있으니 책에서 확인해보시길.

" 나도 신 셰프를 따라 닭기름에 빵을 찍어 먹었고, 먹고 또 먹었다. 장 셰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한국인 세 명이 닭 요리를 먹는데 닭다리도 가슴살도 아닌, 닭기름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기이한 일이 생겼다."

→  닭기름 고소한 건 알지만 보통 살찔까 봐 먹지 않는데, 얼마나 맛있었으면 저걸 다 빵에 찍어 드셨을까.



part2. 프로방스_ 론 강 남부, 프로방스 알프스, 프로방스 지중해

" 해 질 녘 샤토뇌프 뒤 파프의 해는 마치 카로틴이 함유된 사료를 먹은 암탉의 계란 노른자처럼 주황빛으로 빛났다. 해질 녘 시원한 북풍이 불 때마다 '아, 나는 이 미스트랄(mistral: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주로 겨울에 부는 춥고 거센 바람)로 시큼한 산미가 올라오는 밸런스가 좋은 아재가 되고 있어. 수령 40년이 넘은 샤토뇌프 뒤 파프의 그라나슈 포도나무처럼!'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울컥해진다.

→ 잠깐. 내가 지금 시집을 읽고 있었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멋진 시적 표현이다.


"(와인 시음 후) 언젠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 씹었던 풍선껌 맛이 났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맛있어서 턱이 빠져라 씹었던 풍선껌 향이 폴폴 올라왔고, 그 시절 함께 뛰어놀던 동네 친구들, 땀 냄새, 웃음소리, 시시껄렁한 욕지거리, 노란 햇볕과 파란 바람 냄새까지 그대로 내 눈앞에 떠올랐다."

→ 무언가를 마시거나 먹고 난 리액션(표현)이 이렇게 디테일할 수도 있구나.



위에 다 담지 못했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건 해박한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콘텐츠다. 브레스 토종닭이 길러지는 과정, 로제 와인이 만들어지는 방법 등이 디테일하게 표현돼있다는 점에서 전문 요리 서적이다.


책을 덮으며 떠올랐던 생각이 있다. 파리 출장 때마다 파리만 다녀왔던 게 후회되었다. 당시 우리 지사는 몽빠나스타워에 있었고, 그 건물 바로 앞의 몽빠나스역은 파리 남부로 다니는 기차들의 역이었기 때문이다. 한두 번 저 기차를 타고 그냥 떠나버려?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과거의 나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이렇게 코로나가 발을 묶어 놓을 줄 알았겠냐고!!


단언컨대 이 책 한 권만 들고 프랑스 남부 여행을 떠나도 손색이 없으리라. 지도는 구글맵이 안내해줄 것이고, 각 지역별 특징과 들러야 할 곳은 여기 이 책 한 권에 다 담겨있으니. 나중에 알았지만, 시리즈로 스페인 편도 출간될 거라 하니 하나씩 모아가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사진: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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