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데리고 사는 법

프롤로그

by 홀짝

대낮에 카페에서 글을 끄적이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카페 안에는 나처럼 노트북을 펼쳐 놓은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두서넛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카페 통 유리창 밖 사거리에는 정신없이 차들이 교차하고 인도에는 나의 시선 따위 알 턱이 없는 행인들이 제각기 저마다의 빠르기로 어딘가를 향한다. 몇 초 되지도 않는 동안 내 시선이 잡아낸 사람들의 숫자는 전부 얼마나 될까.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떤 삶의 이야기를 써오며 살고 있나. 어떤 모습의 ‘나’를 데리고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다들, 잘 살고 있을까.


겁도 없이 '나를 데리고 사는 법'이라는 이름을 붙인 글을 시작하고 있지만 나는 스스로 ‘나를 잘 데리고 산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어느 순간 번쩍 갑자기 ‘나를 데리고 사는 법’을 깨우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줄곧 나란 사람을 데리고 살기가 몹시도 힘들어서 쩔쩔맸을 따름이다.


나를 데리고 살기 힘들다는 것은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를 데리고 살아나가야 할 세상이 힘들거나, 내가 나를 힘들게 하거나. 혹은 둘 다. 사람마다 정도는 달라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데리고 살기가 참 힘들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는데, 생각해보면 나를 데리고 사는 게 힘들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다. 내 앞에 세상은 만만하기 그지없고, 자기 자신에게도 꽤나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설령 있다 해도 죽을 때까지 늘 한결같이 그렇기만 할까.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자기를 데리고 살기 힘들다는 놈이 ‘나를 데리고 사는 법’이라는 글을 쓴다니 웃기는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나를 데리고 사는 무슨 뚜렷한 방편이란 게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 살아 있는 한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무슨 방법을 알고 있어야 가능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놓을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를 ‘덜 힘들 게’ 데리고 사는 법이라든가, 나를 ‘잘’ 데리고 사는 법은 그럴듯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도 명확한 답은 없다. 명확한 답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사기를 칠 만한 배짱도 재주도 없다.


그럼에도 나를 데리고 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가뜩이나 세상도 팍팍한데 데리고 사는 나 자신이 영 마음에 들지도 않고 자꾸 나를 더 힘들 게 해서 이런 답도 없는 고민을 본의 아니게 늘 머릿속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 이 글은 ‘나를 데리고 사는 법’에 대해 그동안 내가 해온 답도 없는 고민의 기록이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제안이다.


생각과 글이 여전히 서툴지만,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와 공감으로 가 닿았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