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내가 나를 바라보기

by 홀짝
<인사이드 아웃>


픽사(Pixar)가 만든 애니메이션은 믿고 보는 편이다. 일단 재미있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따라가다 보면 감동과 여운이 남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상이 기발하다. '저걸 저렇게도 생각해서 만들 수 있구나' 하면서 감탄한다.


그중에서도 <인사이드 아웃>을 가장 좋아하는데, <인사이드 아웃>에는 열한 살 소녀 라일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단순히 '열한 살 소녀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으로만 설명이 끝난다면 특별할 게 없겠지만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은 엄밀히 말하면 '라일리 내면의 감정들'이다. 라일리의 내면에서 각기 다른 감정의 영역을 맡고 있는 기쁨, 슬픔, 까칠, 소심, 버럭 캐릭터들은 라일리가 마주하는 모든 상황을 관찰하면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 갑작스럽게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된 라일리가 바뀐 환경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지만 <인사이드 아웃>의 진짜 무대는 감정 캐릭터들이 좌충우돌하는 라일리의 내면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와 내면의 감정들은 사실 그 자체로 모두 라일리 자신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라일리의 감정들이 라일리를 타자화한다. 각각의 감정 캐릭터들은 마치 라일리라는 거대 로봇 안에서 본체를 조종하는 파일럿인 것처럼 보인다. 라일리를 1인칭으로 놓고 보면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를 데리고 산다는 것


<인사이드 아웃>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를 데리고 산다’는 표현 또한 자신을 타자화하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면이 있다. 나 자신을 타자화한다는 건 분리해서 생각해본다는 것이고 스스로를 분리해서 내가 나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어차피 관념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가정이기 때문에 이걸 말이나 글로 풀자면 ‘나’, ‘자신’, ‘스스로’라는 특정 단어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어서 좀 난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런 관념적 상상력까지 동원해가면서 나 스스로를 바라봐야 하는 걸까.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외부의 것들을 더 많이 보고, 신경 쓰기 때문이다. 육체의 모습이야 때때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살필 수 있다 하더라도 내면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우리는 의외로 우리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 모습을 제 때 알아채지 못한 채 놓치고 산다.


또 한 가지, 내가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가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은 그동안 내가 지나온 시간, 그 시간 동안의 행동과 생각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인데도 종종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당황하고 혼란에 빠진다.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고, 내가 바라는 모습대로 나 자신이 따라와 주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를 데리고 사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다.


뒤에 이어질 글의 대부분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나 자신을 살피는 것’,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바라 보고, 살피고, 대화하는 것. 지극히 사랑하는 타인을 대할 때 필요한 요소 아닌가. 나를 데리고 사는 데에 있어 ‘어떤 모습의 나인가’ 보다 중요한 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다. 좋으나 싫으나 맘에 드나 안 드나 나를 데리고 사는 나와 내가 데리고 사는 나는 끝까지 함께 가야 할, 끝까지 함께일 수밖에 없는 관계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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