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나와 내 눈에 비친 타인을 비교하는 것
서로 다른 둘의 어떤 능력을 비교하고자 할 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공평한 조건이다. 격투 종목도 마찬가지. 한쪽은 온갖 보호대를 다 갖추고 무기까지 들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그저 맨몸으로만 링에 올려놓고 어느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싸우라고 한다면 그건 대결이 아니라 폭행이나 학대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한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그런 건지 사회가 커지면서 하도 비교할 구석이 많아져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남이 나를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은 기분 나빠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런 비교를 싸움이라 한다면, 이 싸움은 사실 너무 불공평하다. 사람은 타인을 대할 때 완전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뇌를 링크해서 공유하지 않는 한, 원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은 보여 주고 싶은 것, 보여 줄 수 있는 것만을 ‘매우 선택적으로’ 보여준다. 좀 더 깊은 관계에서는 있는 그대로에 가까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그조차도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하는 선이라는 게 분명 있다. 남을 대하는 내가 그렇고, 나를 대하는 남이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식하는 타인은, 관계의 깊이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몹시 제한적이다.
그뿐인가, 아예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사람은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모습대로 자신을 바꾸기도 하니까. 이런 것을 일종의 방어기제라 한다면, 사람은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의 갑옷을 입고 다른 사람을 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사람에 따라 두께의 차이가 다소 있겠다.
온라인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오프라인에서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그 정도가 훨씬 더하다. 이제는 옛날 옛적이 되어버린 싸이월드에서 요즘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이르기까지. 소셜 네트워크는 오프라인에서 1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지인의 근황을 알 수 있어 반갑지만, 거기서 알 수 있는 그들의 근황이라는 게 대부분 잘 사는 모습이다. 한 번 쭉 훑어보고 있노라면 내가 아는 사람의 90% 이상은 나보다 훨씬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나 자신도 SNS에는 비교적 좋은 일상만 가려 올린다는 사실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내가 보는 나'
그럼 내가 보는 나 자신은 어떨까.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발가벗은 우리의 내면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가장 어둡고 습한 구석, 퀴퀴하고 불편해서 나조차도 외면했던 부분까지도 우리 자신만은 알고 있다. 그것이 나만 알고 있는 과거의 부끄러운 행동이든 잠깐 스쳐간 생각이든 말이다. 마음 독하게 먹고 나는 그런 행동도 생각도 한 적이 없다고 굳게 믿으며 스스로를 세뇌하지 않는 이상, 남은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 자신을, 내 눈에 비친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내 눈에 비친 다른 사람은 튼튼한 갑옷과 무기로 중무장을 하고 링에 오르는데, 그 앞에 발가벗은 맨몸의 자신을 세워 놓고 싸움을 붙인다. 이렇게 불공평한 싸움이 또 어디 있나. 이 정도면 자해가 아닌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도 나쁘지만 그건 적어도 당장 자신을 할퀴는 일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그건 이미 내면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아니니까 아예 다른 얘기다.
그렇잖아도 불공평한 이 싸움은 얄궂게도 스스로 작아져 있을 때, 나를 데리고 살기가 버거울 때 더 빈번하고 과격하게 일어난다. 하필이면 내가 보기에도 내가 가장 못나고 볼품없을 때 그것도 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을 골라서 싸움을 붙인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장 잔인했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러지 말자. 내가 보기에 주변 사람들이 나와는 다르게 꽤나 잘 살아가는 것 같고, 나처럼 나약하거나 무기력하지도 않은 것 같고, 나처럼 멍청하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도 않는 것 같아도 어디 실제로도 그렇겠는가.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김수영 시인의 <강가에서>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아, 정말 그렇다. 세상 사람들 다 안 그런데 나처럼 사는 이는 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작아지고, 비교할수록 실망스럽고 상처 받았다. 하지만.
그게 정말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 나만 하는 게 아니다. 김수영 시인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시로 표현을 했을 테고, 시를 보면서 공감한 수많은 사람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 내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나 같지 않은 것 같은데, 막상 내 주변의 다른 사람 눈에는 바로 내가 멀쩡하게 사는 사람 중 하나로 보이는 게 아닐까.
대부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비교까지 해가면서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