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삶의 무게는 변한다
같은 일상, 같지 않은 나
비슷한 일상, 달라진 것 없는 날들 가운데에서도 나는 늘 변한다. 어떤 날은 아침 출근길부터 왠지 몸과 마음이 가볍다. 눈 앞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놓쳐도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다. 매일 주어지는 시간처럼 닥쳐오는 자잘한 스트레스도 가볍게 웃어넘긴다. 이 또한 살아가는 과정이겠거니 하면서 높은 산 정상에서 산 아래 풍경을 감상하듯 시야도 마음도 넓게 가져본다. 달라진 것 없는 일상의 날들 가운데서 왠지 희망이란 걸 품어보기도 하게 되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도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인데도 유독 집을 나서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날. 어제도 그제도 들었던 직장 상사의 영혼 없는 잔소리가 까닭 모르게 나를 짓누르는. 머리로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소한 일에도 온 맘이 뒤흔들린다.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의 일상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와 오늘 같은 하루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암담함에 앞을 내다볼 엄두도 나지 않는, 그런 날이 있다.
마음의 중력
무게와 질량은 다르다. 질량은 물체 고유의 양을 뜻하지만 무게는 여기에 중력의 작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지구보다 당기는 힘이 작은 달 위에서는 우리 몸무게가 더 줄어들 것이며 몸을 움직이는 데 드는 힘도 덜하겠지만 반대로 지구보다 당기는 힘이 두 배로 큰 행성에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힘도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우리 마음에도 중력이 있다. 지구의 중력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마음의 중력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마음의 중력이 변할 때마다 삶의 무게도 변한다.
마음의 중력이 변하기 때문에 같은 일에도 느껴지는 무게감과 필요한 힘의 크기가 다르다.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의 중력이 커져버린 때에는 너무 사소해서 공기 마냥 무게를 느낄 수 없었던 것들조차 한없이 무거워진다. 그럴 때는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기도 버겁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무게가 나를 주저앉힌다.
그렇게 무게에 짓눌려 엉금엉금 기어가듯 나아가며 버티다, 혹은 견디다, 혹은 주저앉아 괴로워하다 차츰 마음의 중력이 약해지면 조금씩 몸을 일으키고 어깨를 펴고 다시 걸어 나간다. 뛸 수도 있게 된다. 마음의 중력은 우리 안에서 나오지만, 그것을 제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유독 마음의 중력을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다. 마음의 중력은 우리 안에서 나오지만, 그로 인한 무게 또한 우리 힘으로 지탱해야 한다.
평소에는 큰 어려움 없이 짊어졌던 삶의 무게가 갑자기 벅차게 느껴질 때는 당황하거나 재촉하지 말고 잠시 앉아서 버티는 데에만 집중해도 좋겠다. 그럴 때는 굳이 앞을 내다보고 멀리 볼 필요도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지금 땅을 딛고 서 있는 내 발끝을 보면서 견디기만 해도 좋다. 아예 질끈 눈 감아버려도 좋겠다. 다시 일어나 걷고, 뛸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중력이 약해질 때까지.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금방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마음의 중력이 끝도 없이 커져갈 수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마음의 중력이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반대로 모든 것들이 한없이 가벼워져 그 어떤 것에도 무게를 느낄 수 없어진다. 모든 게 무의미해져 허망함을 느낀다. 그러다 자신의 존재조차 중력을 잃고 공중에 뜨고 만다. 무게에 짓눌릴 때는 한 치를 나아가기도 힘겨웠던 발걸음이 마음의 중력이 아예 사라지고 난 후에는 공중에 떠올라 두 다리를 허우적거릴 뿐 걸음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의미를 잃은 자신의 존재가 최소한의 중력도 갖지 못한 채 자꾸 공중으로 높게만 떠오르다 보면. 이 땅 위에서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 마음의 중력이 끝도 없이 커지는 것, 아예 사라지는 것은 달리 말하면 ‘깊은 우울’이다.
무게에 짓눌려 내가 부서지기 전에, 무게를 찾지 못하고 내가 공중으로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향해 손짓해야 한다. 그런 나를 주변 누군가가 알아채고 손을 뻗어줄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내가 손을 내밀어야 잡을 수 있다. ‘나를 데리고 사는’ 우리 자신은 자주는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살피고 확인해야 한다. 그러다 도저히 나를 데리고 살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그때만이라도 잠시 다른 이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의 무게를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나를 짓누르는 무게감에 내 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 순간이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