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을 저울질하는 것
새로운 전자제품을 사려고 할 때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어떤 분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할 때처럼 뭔가에 막 꽂히기 시작할 무렵이면 빼놓지 않는 것이 인터넷 검색이다. 다이어트와 요요를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나는 다이어트 모드에 돌입하는 시기가 되면 준비운동처럼 운동과 다이어트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다.
단단해진다는 것
다이어트를 꼭 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근육이 커지는 원리’가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운동하면서 손상받은 근육이 회복 과정을 거치면서 이전보다 크게 발달한다는 거였는데 상처를 입어야 단단해지는 건 근육도 마찬가지였다니 뭔가 심오한 섭리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아 근육량이 적은 사람보다는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한 사람이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다. 수차례 근손상을 입으면서 근육을 발달시킨 사람이니 들어 올리는 힘도 좋고 버티고 지탱하는 힘도 더 좋을 수밖에 없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그동안 들어 올리고 버티고 지탱했던 무게의 결과다.
처음 근육이 커지는 원리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뭔가 심오한 섭리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건 삶의 무게를 버티고 고통을 견디는 것 또한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복되는 마찰과 압력으로 굳은살이 박이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 또한 상처를 입고, 무게를 견디면서 더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비슷한 일을 겪어도 더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이유는 그동안 버티고 견딘 무게의 차이 때문일까. 남들은 대부분 잘 버티고 견디는 일이 유독 나는 견디기 힘들다면, 혹은 그런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다면 그건 내가 평균 이하로 나약하기 때문일까. 보통 수준도 되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지 못한 내 잘못인가.
괴로움은 저울질할 수 없다
꼭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책임, 잘못이 아니다. 이전 글에서 얘기했듯이 마음의 중력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마음의 중력에 따라 내게 전달되는 무게 또한 달라진다. 그런데 마음의 중력은 사람에 따라서도 다 다르다. 헬스장 운동으로 치면 같은 질량의 역기를 드는 두 사람은 같은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무게 또한 같겠지만 사람의 마음속 중력은 저마다 다르기에 같은 일을 겪어도 전해지는 무게감은 다른 것이다. 전해지는 무게감이 다르므로 필요한 힘의 크기도 다르다.
괴로움을 저울질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왜 나는 이 정도도 남들처럼 버티지 못할까’ 자책할 필요도 없고 ‘왜 너는 그 정도에도 그렇게 힘들어하느냐’고 책망해서도 안된다. 애초에 기준이 다른 것은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전해지는 무게야 어찌 됐든 버티는 힘을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의지와 노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헬스장에서 운동하듯 내가 적당히 견딜 수 있을 만한 고통과 괴로움의 무게를 딱 맞춰서 일부러 찾아 겪을 수는 없다. 일부러 내는 상처는 자해다.
세상에 갓 태어나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다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고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았다. 남들과 다를 것 없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고, 자녀를 낳아 키우거나 그렇지 않은 그 모든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이 그간 버티고 지탱해온 모든 무게의 결과다.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유난히 어려움을 겪었거나 지금 바로 이 순간 힘에 겨워 제 한 몸 가누기 어려운 지경에 있더라도 괴로움을 저울질해가면서 나약함을 탓할 수는 없다.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가늠할 수도 없거니와 견뎌온 경험의 무게와 단단함의 두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더 단단해지고 싶다. 버티고 견디는 힘도 더 강해져서 어지간한 일에는 끄떡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감당할 무게와 감내해야 할 고통의 결과로 얻는 것이라면 지금 필요한 건 나의 나약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잘 견뎌주길 바라며 나를 다독이고 응원하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 내 옆에서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고 있다면 헬스장의 운동 파트너처럼 옆에서 역기의 무게를 살짝 덜어 주는 역할만으로 충분하다.
근육을 강화하는 데에는 근육의 손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 글의 맨 처음 얘기했듯 근육의 손상 이후 반드시 회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충분한 영양공급과 휴식이 있어야 손상된 근육을 회복하면서 강해질 수 있다. 우리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도 단순히 고통만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한 영양공급과 휴식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아마도 공감과 위로, 그리고 격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