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하는 나에게
비행기를 탄 횟수가 이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아직도 난기류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날 생각이 난 김에 한번 검색을 해봤더니 비행기가 높은 고도에서 순항중일 때 만나는 난기류가 추락을 일으킬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단다. 그래도 막상 위아래로 요동치는 비행기 안에서는 몸이 굳고 잔뜩 긴장한 상태가 된다. 비행 중 만난 난기류에 그 정도로 긴장할 필요는 없다는 과학적 근거까지 머릿속에 입력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불안했던 것이다.
나는 불안하다
비행과는 다른 얘기지만 나는 나 자신의 추락이 두려웠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의 기준에서 추락하는 것이 두려웠고 내가 속한 관계가 추락하고 파괴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추락의 원인이 주변 상황이나 조건, 혹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에 이런 불안을 갖게 된 것인지, 이런 불안 때문에 나를 데리고 사는 게 어려웠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불안을 느끼는 주체는 나였고 잠재적 불안요소 또한 주로 나였다.
그렇다고 불안이 항상 나를 괴롭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에너지가 된 적도 있었고 나를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으니까. 그러면서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기에 불안은 나에게 일종의 잠복 요소이자 관리 요소였다.
한동안 불안이 수면 위로 훅 떠오르는 일이 없었는데 요즘 다시 내 마음의 공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감정 1위에 불안과 두려움이 등극했다. 이유가 너무 명확해서 별로 당황스럽지는 않다. 얼마 전 퇴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른 곳에 이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업으로 글을 쓰고 내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그동안 몇 차례 제 발로 회사를 나온 적은 있지만 다음 예정이 또 다른 회사가 아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지금의 나는 회사를 뛰쳐나왔던 예전에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 결혼도 했다.
퇴사 후 열흘 사이에 회사 사무실에 앉아 있는 꿈을 꾼 것만 다섯 번. 깨어 있는 시간에도 ‘다 잘될 거야’,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더 많았다.
지금의 내 불안과 두려움은 억지로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최대한 스스로 공감해주려 노력하고 있다. ‘당연히 불안하지. 두렵지 않은 게 이상한 거지. 예전부터 나는 평소에도 남들보다 추락의 공포를 훨씬 크게 느꼈었는데. 평상시에도 마음 한편에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이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걸어가야 할까.
지금 내 안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나는 지금의 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두렵고 불안한 걸까. 1차적으로는 도전의 실패일 것이고 그로 인해 더욱 커질 심리적, 경제적 부담이 다음일 것이다. 어느 순간 포기하고 직장으로 돌아가고자 해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도전을 멈추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결과를 내지 못할 경우.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되면, 혼자가 될 수도 있다. 나 스스로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 그 과정의 중간중간 겪게 될 갈등과 상처 또한 감당해야 한다.
끝까지 나를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이 그려낸 디스토피아의 풍경이 대략 이렇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아찔하다. 공감은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그걸 막아낼 힘이 없다. 있었다면 애초에 불안하지도 않았을 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약속과 다짐뿐이다. 만약 정말 그런 상황이 내 앞에 닥치더라도, 나만큼은 스스로를 놓지 않고 버티고 서 있겠노라고. 사실 그마저 아직은 자신이 없어서 매일 같이 다짐해야겠지만 내가 나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사람이 느끼는 거의 모든 종류의 불안은 그 밑바탕에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돈, 명예, 지위, 건강, 관계처럼 나에게 머물던 것이 어느 순간 떠나갈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죽음. 내 생명이 내게서 떠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나를 데리고 사는 것도 끝나는 것이므로 죽음은 예외다.
죽음을 제외하면, 모든 것을 잃더라도 끝까지 나에게 머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나 자신. 모든 것이 나를 떠나가도 나를 데리고 사는 나 자신만은 남는다. 모든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날 수 있지만 유일하게 나만큼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불안해하는 나 자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와 격려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나만큼은 스스로를 놓지 않고 버티고 서 있겠다’ 약속하는 것이다.
죽음을 제외하지 않는다면 불안 앞에 이렇게도 마음먹을 수는 있겠다. ‘까짓 거 죽으면 그만이지. 내가 죽으면 세상도 없는 건데’
그래도 이왕이면, 죽을 다짐보다는 살 다짐이 좋다. 죽는 건 죽는 대로 또 다른 두려움의 영역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