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회사가 망했던 거지 내가 망한 게 아니다.
회사가 망했다.
직원 5명이 전부인 아주 작은 스타트업. 나는 이곳에서 일한 지 이제 고작 5개월 차였다. 소상공인을 위한 F&B 마케팅 대행사. 돈이 되는 대기업만을 클라이언트로 삼는 것이 아닌 지역 상인들과의 상생을 목표로 마케팅을 한다는 회사의 사명이 마음에 들어 이곳의 여정에 합류했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는 때로는 출근이 죽어도 하기 싫었고 때로는 내가 낸 성과들에 기뻐하며 회사를 다녔다. 소상공인을 클라이언트로 삼다 보니 일을 하며 경기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낄 일도 많았다. 5개월.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달이 갈수록 마케팅을 하겠다며 우리 회사 문을 두드리는 사장님들이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마케팅을 열심히 해도 각 매장들의 고객이 예전처럼 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땐 ‘우리나라 경기가 많이 안 좋구나...’ 하며 이 상황이 꼭 남의 일인 것처럼만 생각했다. 조금만 더 시야를 넓혔다면 경기가 안 좋다, 클라이언트가 줄어든다, 회사의 매출에 영향을 준다, 내 회사 생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대표님은 한 날 회사의 모든 구성원들을 모아 더 이상 회사에 융통할 수 있는 현금이 없어 사업을 접게 되었다 통보했다. 대표님이 정한 마지막 출근 날은 통보일로부터 일주일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죽하셨으면 이런 결정을 하셨을까.’, ‘그래도 월급이 밀리지 않고 일한 만큼은 모두 제때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스스로를 위로했다. 또 돌아서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해고를 통보할 수 있나.’ 분노했다. 마지막 출근 날까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내 마음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참에 쉬면서 이직 준비를 하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한가로이 쉬면서 다음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퇴사였기에 이 백수 기간을 위해 준비된 자금이 없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이력서를 수정하고 포트폴리오를 수정해 이 공백을 메꿔야만 했다. 그래서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공고 중 직무가 대충이라도 비슷하면 이력서를 지원했다. 이력서 난사. 그래 이것은 이력서 난사가 맞았다. 대충 어림잡아도 100개 이상의 기업에 이력서를 지원한 것 같다. 그리고 10%도 되지 않는 확률로 면접 제안을 받았다. 10%의 확률로 면접을 볼 수 있게 돼 기뻤지만 90%의 확률로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나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며 내 이력이 이 정도로까지 형편없는 걸까 자책했다. 경기도 어렵다는데 구직을 하는 기간이 길어질까 두려웠다. 평소처럼 먹고 평소처럼 생활하는데도 자꾸만 살이 빠졌다. 이력서를 고치다 가도 밥을 먹다가도 친구들과 만나서 놀다가도 문뜩문뜩 눈물이 흘렀다. 스스로 스트레스와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내가 걸어온 과거를 뒤돌아봤다. 꼭 다시는 취업을 하지 못하고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
면접을 봤던 곳 중 한 곳에서 최종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연락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를 찾아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회사와 연락해 출근일을 정했다. 첫 출근까지 3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 회사와 첫 출근일을 정했던 그 주는 그저 마냥 기뻤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조금의 차분함을 갖게 되니 내가 이 회사에 가는 게 진짜 맞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직무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곳이었다. 솔직하게 이곳이 나를 왜 뽑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고민이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과 전혀 다른 일들을 하게 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곳에 가서 하게 되는 일들이 내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 하지만 그사이 나를 불러주는 다른 곳은 없었고 출근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가보고 결정하자. 일단은 이곳에서 일을 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마음에 새기며 첫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 대한 첫인상은 한 단어로 ‘최악’이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담당해서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일절 설명도 없이 일단 일을 시켰다. 인수인계서도 없었다. 일단 해봐. 나의 상사는 그렇게 말했다. ‘주로 어떤 업무를 하게 되냐?’는 질문엔 ‘돈 되는 건 다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 달만 참아보자, 한 달만 견뎌보자 생각했지만 하루에도 10개씩 이 회사의 단점이 보였다. 이 회사에 대한 감정이 확실하지 않아 단점만 보이는 건지 진짜 나쁜 회사여서 그 단점들이 겨우 일주일 차인 나에게까지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매일 밤이 불안했다. 이건 단순히 출근이 싫어 생기는 불안한 감정들과는 달랐다. 이 회사가 나에게 최선일까?, 이 회사에서 쌓아가는 포트폴리오들이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 돈이 되는 거라면 다 한다는 이 회사에서 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다녀야 할까?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출근할 직장이 있는데도 매일 밤 울었다. 다음 날의 출근이 두려워 울어본 건 사회생활 4년 차인 나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불현듯 아,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사 일주일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한 달만 버텨보자던 나의 다짐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나니 회사에 퇴사를 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팀장은 당황한 모습으로 나를 회의실로 데려갔고 꼬치꼬치 묻는 그에게 내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를 모두 이야기했다.
지금은 출근을 하던 그 일주일의 기간보다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었지만 괜찮다. 어떤 상황에서든 ‘일단은 견뎌보자’의 마음으로 버텨내기만 하던 내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조금은 감탄하기도 했다.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회사가 망했던 거지 내가 망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괜찮다. 조금은 더 나를 위한 선택을 해도 좋다. 새로운 기회는 또 올 것이고 나는 내가 놓아버린 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