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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로 Oct 21. 2021

로마와 바르셀로나에서 미리 본 통일

유럽여행

로마는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도시였다. 겨울로 접어드는 11월말임에도 이탈리아의 햇살은 강렬했다. 색안경과 눈두덩 사이 틈새로 파고드는 빛줄기를 막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한쪽 손을 눈썹위에 붙였다. 경례자세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 자세는 로마를 둘러보는 내내 유지됐다. 햇살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대 로마인이 남긴 팔라티노언덕, 포로로마노, 콜로세움 등 거대한 유적을 보는 내내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로마에도 단 한곳 고개가 숙여지지 않는, 아니 고개를 숙이기 싫어지는 유적이 있었다. 고대 로마 유적지 바로 옆에 세워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바로 그곳이었다. 오랜 풍상을 겪어 나이든 현자처럼 보이는 고대 로마 유적과 달리 이 기념관은 새하얀 바탕에 압도적인 규모 탓에 위압적인 태도의 군인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기념관 안팎 곳곳에 초병이 배치돼있었다. 군인들은 권한과 근거도 없이 나의 출입을 제지하는 등 특유의 권위적인 행태를 보였다. 기념관에 올라서자 교통 요충지 베네치아광장을 비롯해 로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로마, 아니 전 이탈리아를 호령하겠다는 오만한 시선이 느껴졌다. 보는 것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 기념관의 주인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사실 이렇게 뻐겨도 될 만큼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긴 하다. 그는 19세기 후반 아펜니노반도를 통일한 초대 국왕으로 현 이탈리아의 국부로 추앙받는 자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멸망 후 게르만족에 점령당했고 이후 중세 내내 교황의 영향력 아래에서 지방 영주들에 의해 분할돼 지리멸렬에 빠져있었다. 프랑스혁명 후에는 유럽 전역을 휩쓴 나폴레옹의 군홧발 아래 있기도 했다. 이처럼 굴욕을 당하던 조국을 통일하기 위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 통일운동, 즉 리소르지멘토를 추진했다. 그는 카보우르 등 인재를 중용하고 영국과 프랑스를 우호국으로 포섭하는 등 외교 면에서도 힘을 써 통일의 주춧돌을 놓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통일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개인기로만 이뤄진 건 아니다. 주세페 가리발디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에 통일은 가능했다. 가리발디는 의병부대인 ‘붉은셔츠대’를 이끌고 나폴리와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남부를 장악한 뒤 이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봉헌했다. 가리발디는 남부 원정과정에서 쌓은 명성을 등에 업고 내심 이탈리아 북부까지 수중에 넣겠다는 욕심을 품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군 지휘권을 앞세워 쿠데타를 기도한 세계사 속 무수히 수많은 장군들과 달리 가리발디는 권력욕에 굴복하지 않은 이례적인 인물로 남았다. 


가리발디의 거룩한 양보(?) 끝에 남은 것이 바로 저 무지막지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 이 기념관은 로마 시내에서 가장 거대한 유적으로 지금도 위엄을 뽐내고 있다. 심지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죽은 뒤 로마신들의 거처인 판테온에 묻혔다. 르네상스 천재화가로 지금도 칭송받는 라파엘로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함께 판테온에 묻혀있다. 가히 신의 반열에 올랐다 하겠다. 반면 가리발디의 흔적은 수도 로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했던 가리발디에게 로마는 너무 인색하다. 가리발디가 주목받는 것을 원치 않았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여기서 한반도 상황을 떠올린다. 우리정부의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 북측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군부는 자신을 어느 쪽으로 여기고 있을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일까, 가리발디일까? 권력의 속성상 통일의 공로를 따지고 이후 정권의 향배를 논할 때 양측의 희비는 갈릴 수밖에 없다. 만약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뤄진다면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 공산이 매우 크다. 승리한 쪽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처럼 명예와 실권을 쥐고 반대쪽을 은연중에 깎아내릴 것이고 기싸움에서 밀린 쪽은 가리발디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문재인과 김정은은 누구를 닮고 싶어할까? 


비단 정치지도자의 문제가 아니다. 과연 남한사람들과 북한사람들은 가리발디를 자처할 준비가 돼있을까? 6.25전쟁 후 70년 가까이 나름의 체제와 나름의 방식으로 부와 권력, 경력을 쌓아온 양쪽 주민이 기꺼이 양보할 수 있을까? 국가와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현 시대에 공동체의 통일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요구가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념의 시대는 끝나고 개인의 욕망과 행복이 중시되는 시대가 왔는데 통일이라는 이념을 위해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과 행복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같은 생각은 불경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남북통일은 우리가 학창시절 내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명실상부한 민족사 최대과제다. 남북한 주민이 어울리는 모습이나 남북정상회담 장면을 보기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무조건반사 현상은 오랜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다. 그러니 으레 그래야하는 것처럼 고민 없이 통일을 해버리는 게 마음 편한 일일지로 모른다. 개인의 불만이 있더라도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민족사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꾹 참고 통일 행렬에 동참하면 적어도 후세의 원망은 듣지 않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통일에 관한 고민은 이쯤에서 마무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행선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도 고민은 이어졌다. 아니, 더 깊어졌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통일의 대척점에 있는 ‘분리독립’이 추진되고 있었다. 통일을 이룬 후 관계가 틀어져 분리독립이 추진되는 사례였다. 

람블라 거리를 비롯해 바르셀로나 각지에서 눈에 띈 것은 스페인 국기가 아닌 카탈루냐 공국기였다. 카탈루냐기를 자세히 보면 쿠바 국기처럼 모로 선 삼각형에 가운데 별이 그려져 있었다. 스페인에서 마지막으로 독립한 쿠바처럼 자신들도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주도인 바르셀로나를 비롯해 카탈루냐주는 이미 자치주로 인정받아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받고 있지만 카탈루냐인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카탈루냐 주정부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며 주민투표를 추진했다. 투표율이 50%에 미치지 못해 무산되긴 했지만 카탈루냐인들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이후 스페인정부는 주민투표를 주도한 주정부 인사 11명을 헌법 위반 등 각종 혐의로 구속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바르셀로나 곳곳에서는 이들을 석방하라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주택과 상업용 빌딩을 막론하고 바르셀로나 건물에는 카탈루냐 공국기와 함께 ‘LLIBERTAT PRESOS POLITICS(구속된 정치인들을 석방하라)’라는 카탈루냐어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있다. 인질 또는 포로로 잡혀간 사람의 조속한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 역시 공국기와 현수막 옆에 붙어있다. 국내에는 세월호 리본으로도 알려진 노란 리본은 이곳에서는 다른 의미로 활용되고 있다. 카탈루냐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 명장 펩 과르디올라도 경기 때마다 윗옷에 노란 리본을 달아 독립 추진 정치인들의 석방을 주장해왔다.


바르셀로나 주민은 스페인어 대신 카탈루냐어를 쓰며 독립 의지를 공표하고 있다. 공항 등 각종 공공기관에 걸린 표지판에는 카탈루냐어가 맨 위에 적혀있다. 길거리에서 본 단어의 의미를 찾으려 스페인어 사전을 뒤적이다 결국 못 찾고 카탈루냐어 사전에서야 비로소 단어를 발견하는 일이 반복됐다. 카탈루냐어는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절반쯤 섞어놓은 언어다. 예를 들어 출구라는 카탈루냐어는 sortida인데 이는 프랑스어 sortie와 스페인어 salida를 절묘하게 섞어놓은 단어다. 카탈루냐인들은 이런 식의 언어를 구사하며 자신들은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고 온몸으로 항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처럼 절실하게 분리독립을 원할까? 그동안 스페인으로 통일돼 살아왔으면서 왜 이제 와서 독립을 외치냐는 말이다. 스페인 역사를 돌아보면 카탈루냐인이 이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가 속한 이베리아반도는 고대부터 카르타고, 로마, 게르만족, 이슬람제국 등 외세 침략에 시달렸다. 7세기 이슬람세력에 밀려났던 기존 기독교세력은 이른바 레콘키스타(국토회복운동) 끝에 700여년만인 1492년 기독교 통일왕국을 세운다. 당시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 등 지역별 정치세력이 왕족간 정략결혼을 통해 통합을 이뤄 이슬람세력을 이베리아반도에서 몰아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민간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타 지역과 카탈루냐간 갈등은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졌다. 20세기 초반 마드리드를 기반으로 한 프랑코 군부는 스페인내전 과정에서 공화파를 지지하던 카탈루냐를 집중공격했고 이 때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민간인이 다수 사망했다. 초등학생 40여명이 포격을 받아 숨진 산 펠립네리 광장 등 핍박의 현장은 아직도 바르셀로나 곳곳에 남아있다. 이 때문에 바르셀로나인들의 마음속에는 스페인정부에 대한 원망과 불신이 남아있는 것이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스페인과 카탈루냐의 갈등, 그리고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추진을 보면서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정치지도자간 합의를 통해 통일을 성사시키긴 했지만 주민 융합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이루지 못해 오늘날 균열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 이런 상황을 보면서 미래 한반도의 불안한 미래가 떠올랐다. 문재인과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남북한 정치세력이 통일에 합의하더라도 이후 남북한 주민간 융합이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 카탈루냐처럼 분리독립이 추진될 수 있다. 특히나 지금처럼 주민의사가 공동체의 운영방향을 결정하는 민주주의 사회, 지방분권 시대에는 분리독립 움직임이 형성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남한주민이 걱정이다. 카탈루냐가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독립해도 먹고살만한 경제기반이 마련돼있다는 것이다. 남한 역시 마찬가지다. 남한주민들이 ‘북한이 아니면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이유를 대면서 분리독립을 외치기 시작하면 이를 억누를 명분이 부족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통일을 달성하더라도 주민의사에 의해 분단이 재현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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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바르셀로나를 거치며 한반도 통일에 관한 고민은 더 커졌다. 로마에서는 남북통일에 이르는 데 있어서 정치지도자들의 욕망을 어떻게 자제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바르셀로나는 남북통일 후 주민 불만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공간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을 이루자’ 라는 노래를 주문처럼 외우며 통일만 되면 모든 것을 다 이루고 강대국으로 거듭날 것처럼 외치는 것은 어쩌면, 아니 확실히 거짓말이라는 게 고민의 결과다. 통일을 위해서는 정치세력뿐만 아니라 주민 개개인의 의지와 자제가 필수적이다. 너무 낭만적인 접근도, 너무 실리적인 접근도 안 된다. 낭만과 실리의 중간쯤 어딘가에 있을 골디락스, 그 지점을 찾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갖추는 게 한민족과 남북한 주민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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