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羞恥)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
시대마다 수치라 여기는 것은 다르다. 가령,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상식이던 시대에는 결혼한 부부가 자녀를 갖지 못하는 일이 그들의 큰 수치였다.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자녀를 갖지 못하는 것을 수치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무책임하게 자녀를 갖는 것을 수치라 여기고, 자녀 계획을 현명하게 세우는 것이 지혜라 말한다.
또 수치는 개인적인 영역으로 여겨진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기준도, 영역도 다르기 때문이다. 내게 수치스러운 것은 남들 앞에 들켜선 안되는 내 개인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그것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는 것은 이해받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런데 이번 주간을 지나며 수치가 이 시대에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공동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밤 중, 갑자기 이 나라가 1970년대로 회귀했다. 계엄령? 2024년도에? 옛날 영화에서는 지금 이 시대쯤이면 하늘에서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첨단 우주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현대인이라고 부를 것 같은 연도인데. 사유가 더 가관이다.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의 수호와 종북 반국가 세력의 척결. 이 나라의 지도층은 여전히 이념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무기로 사용하는구나. 덕분에 역사책으로만 보았던,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언론은 통제당했으며 여전히 소설과 영화 등 매체에서 과거를 잊지 말자 부던히 외치는 민주화의 사건이 한 번 더 각인됐다.
순식간에 환율은 1,430원까지 치솟고 세계 주요 국가들이 우리나라를 여행 위험 국가로 지정하는 등, 나라의 위신이 붕괴됐다. 내가 계엄령을 선포한 것도 아니고 당장 내가 이 나라의 행정을 책임지는 사람도 아닌데 내 얼굴에 수치심이 몰려왔다. 분노가 올라오고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속보를 찾아보며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어떻게 볼지는 둘째 치고, 이 모든 게 이 나라의 국민들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게 더 한탄스러웠다. 물론 선출할 때에는 이런 결과가 있으리라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겠지만, 그를 뽑든 뽑지 않았든 함께 만든 선택이기에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공동의 수치심을 겪는다.
그동안은 각자도생을 외치며 그저 이 시간이 잘 지나가기를, 적어도 나와 내 가족,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큰 해 없이 무탈한 일상이 이어지기를 바랐다면 더 이상은 아니다. 지금 이 나라가 깊은 수치 가운데 빠졌음을 인정하고 그 수치가 곧 내 수치임을 받아들이자. 부끄럽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깊이 분노하고 처절히 애도하며 관심을 끊지 말자. 전심으로 기도하고 서로를 돌보자. 내 것이 아니라 외면하지 말고 지금 함께 부끄러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