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맛집은 아니지만, 글 맛은 있습니다.

맛은 주관적이니까요.

by 호롱

예전에는 먹는 것은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맛에 그렇게 예민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싼 음식이 왜 비싼지, 단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곤 했었다.


하지만 맛의 미묘한 세계를 알고 난 이후에는 세상 모든 음식이 새롭게 보였다. 그리고 비싼 음식들이 왜 비싼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허영심을 채우는 수단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있다.)


음식의 맛처럼, 글에도 맛이 있다. 책은 물론이고, SNS, 브런치, 티스토리의 글들을 보다 보면 맛이 있는 글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도 꽤나 종종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글이 있을까? 대체 이런 글은 누가 쓰는 걸까? 인적이 드문 낯선 골목에서 새로운 음식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 유명한 지역도 아니고, 사람이 붐비는 골목의 식당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숨어있었지?


맛있는 글은 잘 쓴 글과 다르다. 잘 쓴 글은 글의 내용이 탄탄하고 얼개가 잘 짜인,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글이다. 반면 맛있는 글은 조금은 서툴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글에서 느껴지는 시선과 문장과 단어가 고유한 글이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잘 쓴 글은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미슐랭 레스토랑의 요리라면, 맛있는 글은 친근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골목 식당의 백반이랄까?


나는 그 차이가 '손맛'에 있다고 생각한다. '손맛'은 비록 투박할지라도, 고유한 삶과 생각을 담는다. 미슐랭 레스토랑의 요리에 '손맛'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골목 식당의 백반에는 잘 어울리는 것처럼, 잘 쓴 글에는 '손맛'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맛있는 글에는 잘 어울린다.


그래서 나는 맛있는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신기하게도 의식주에 속한 것을 '짓는다'라고 표현한다. 옷을 '짓다', 밥을 '짓다', 집을 '짓다'처럼 말이다. 그래서 '손맛'이 녹아있는 맛있는 글에는 '쓴다'보다는 '짓다'가 더 잘 어울린다. 순수한 아이들의 솔직 담백한 글을 선보이는 대회도 '글쓰기 대회'가 아니고 '글짓기 대회'가 아니던가.


나는 맛있는 글을 짓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하지만 그보다 '손맛'이 느껴지는 글을 짓고 싶다. 나는 내가 쓰는 글들 속에 '나'라는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길 바란다. 나는 '나'라는 유한한 존재 속에 소용돌이치는 이 유한한 생각들이 휘발되기보다 사람들에게 퍼져나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짓는다.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키는 지진과 같은 글보다는, 깊은 숲 속 작은 연못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과 같은 글을 짓고 싶다. 그래서, 이 작은 연못에 우연히 들른 누군가의 마음에 나의 글 한 방울이 떨어지고, 그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나의 글은 충분하다.


머릿속의 생각들은 결코 화려하고 멋지지 않다. 단순하고 사소하며 혼란 그 자체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생각에는 '나'라는 맛이 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이 낼 수 있는 나의 '손맛' 말이다. 글 맛집은 아니더라도, 나름의 글 맛은 있는 그런 식당이 되었으면 한다. 미어터지지도 않고, 단골도 많지 않지만, 이따금씩 오는 손님이 맛있다고 생각해 주는 그런 식당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