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본주의의 노예들을 위하여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씌어졌다.
-과로에 지쳐있는, 혹은 노동현장의 부자유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노동자.
-자신의 밭이 공장화되는 것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농민.
-'경제'(구체적으로, 앞으로의 취직)라는 요소가 자신의 교육의 자유에 장애물이 되어있다고 느끼는 학생.
-광고산업이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느끼고 있는 소비자(특히 주부).
-세계의 자연계가 사멸을 계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염려하고 슬퍼하고 있는 사람.
-왠지 모르게 위기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막연하고 분명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이런 매력적인 머릿말이라니! 저자가 자신의 잠재적 독자로 소개한 이 사람들의 교집합이 '나'라는 생각이 드는, 이 책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정치학자 겸 평화운동가인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s Lummis)는 1775년 토마스 페인의 '커먼 센스(Common Sense)'를 이을 시대적 통찰을 집필한다는 취지에서(주로 일본의 사례지만) 이 책을 써내려갔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의 장막을 새로운 형태의 '상식'으로 연 이 책 속 주옥같은 문장들을 여기에 옮긴다.
환경파괴, 종의 전멸, 빈부 격차... 이런 문제에 대해 무언가 철저한 해결을 탐구하려 하면 웬일인지 비상식, 비현실주의로 받아들여진다.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는 사람들은 유토피아주의자, 꿈을 꾸고 있는 사람, 낭만주의자, 상아탑 속의 사람이라고 불려지고, 현상을 그대로 계속할 것을 말하는 사람이 '현실주의자'가 된다. 근본적인 문제를 될수록 무시하고 돈벌이에 전념한다는, 그런 사람들이 '현실주의자'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다.
타이타닉 호에는 다양한 판에박은 일상사가 있다. 그것을 계속하는 사람이 현실주의자다. 누군가 '엔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비상식, 비현실주의적이다. 오늘날 세계 전체에 퍼져있는 현실주의는 그러한 현실주의다. -p. 16~17
'폭력이 폭력이 되지 않는 마법' 국가의 힘은 국가의 이론 이전의 마법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세속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국가는 아직 완전히 탈신비화되어 있지 않다. 지금도 국가에는 폭력행위를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변화시키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
국가권력은 국민의 지지(적극적 지지건, 소극적 승인이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국가에 '정당한 폭력'의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국민이 국가에게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 명쾌하다. 국가가 그것을 사용해서 우리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 "만인과 만인의 투쟁")
그런 의미에서 20세기는 홉스의 이론이 대대적으로 실험된 시대였고, 지난 100년을 돌아볼 때 결과는 확실하다. 20세기만큼 폭력에 의해 살해된 인간의 수가 많았던 100년은 인류 역사에 없었다. 누가 가장 많이 사람을 죽였는가 하면, 개인도 아니고 마피아도 조직깡패도 아니다. 그것은 국가다. -p. 28~33
'경제발전'을 이데올로기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민족주의자, 파시스트, 나치, 레닌주의자, 스탈린주의자 등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 필요하다고 하는 점에서는 20세기 주요 이데올로기간 의견 차이가 없다.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거꾸로 그만큼 이데올로기로서 성공했다는 실증이기도 하다. -p. 60
발전 이데올로기가 태어난 순간은 1949년 1월 20일,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트루먼의 발표. "미국에는 새로운 정책이 있다." 미개발 나라들에 기술 및 경제적 원조를 하고, 투자해 발전시킨다는 정책. 당시에는 매우 새로운 정책이어서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용어가 처음 생김. 발전이 처음으로 국가정책이 된 시점.
'미개발'은 '야만인'의 다른 말이었고, 유럽과 미국 이외 모든 문화가 이 범주에 들어갔다. 그러한 이데올로기 아래 역사에 없던 대규모 정책이 시행된다. 앞서 식민지주의, 제국주의는 착취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세계화'라는 표현을 통해 착취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바깥에서 자본이 들어와 자연을 파괴하고 전통적 문화를 바꾸고 착취한 뒤 이를 '발전'이라 부르면 마땅히 그래야 할 과정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p. 69~70
이반 일리치가 '빈곤의 근대화'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뜨거운 얼음'이란 말처럼 모순되게 들렸다. 그렇게 들리는 것 자체가 근대화가 되면 빈곤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고정관념의 엄청난 힘을 말해준다. 트루먼 대통령의 경제발전 이데올로기 속에는 경제발전이 되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다, 언젠가 세계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대의명분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반세기를 거치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참고)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일생 동안 같은 회사에서 일하기보다는 잠시 일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가 좋다거나, 회사에 얼마동안 다니다가 그만둔다는 삶의 방식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정도는 이미 '상식'이 되어있지만 사실 아직 '참된 상식'이 되어있지는 않다. 왜 그렇게 바뀌지 않는 걸까. 경쟁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은 두려움이다. 암묵 속에 존재하는 두려움이다. 집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될 지 모른다는 공포, 병에라도 걸리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비를 지불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공포.
공포가 경쟁사회의 원동력이다. 공포가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그런 공포가 있다는 것은 사회의 안전구조가 약하기 때문이다. 경쟁사회란 기본적으로 그런 구조다. 공생사회, 상부상조 사회를 실현하고 서로가 뒤를 돌아봐주는 그런 진정한 의미의 안전이 보장된 사회라면 그 두려움은 크게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p. 98~99
*대항발전(counter-development)
: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개념. 앞으로 발전해야 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다. 인간사회 속에서 경제라는 요소를 조금씩 줄여가는 과정. '줄이는 발전'(에너지 소비 줄이기), 이후 경제 이외의 것을 발전시키기. 즐거움, 행동, 문화 등. 맑스의 사상은 기계문명을 '누가 갖느냐'였지만, 이 개념은 기계문명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일과 소비를 보는 사고방식에서 우리는 과거 경제발전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하나는 인간을 '인재'로 보는 것. "나는 재료가 아니고 인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 인간은 생산수단이 아니다. 또 하나는 소비자. 사람을 소비수단으로 여기는 태도. 우리는 일 중독, 소비 중독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태도를 배워왔다. '대항발전'이 가진 목적의 하나는 그런 '인재'에서 보통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값이 매겨져 있지 않은 즐거움, 사고 파는 일과 관계가 없는 즐거움을 되찾는 일이다. -p.107
첫걸음은, 경제적 결정이라고 말해지는 정책결정이 대부분 실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가치판단을 동반한 선택이며, 살아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