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타입 시각보정의 예민한 디테일
타입 디자이너 Scannerlicker의 <On Logotype Calibration>을 번역한 글입니다. 브랜딩, 콘텐츠 디자인을 하는 분들이 로고타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 글을 소개하게 되었어요. 원작자와 논의하며 진행하였습니다. Obrigado, Fábio.
Scannerlicker 시리즈
1. 시각보정으로 로고 완성도 높이기 (본글)
3. 베지어 곡선 제대로 그리는 법
4. 레터링, 획의 기술
5. 타이포그래피와 가독성
#브랜딩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타입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레터링 #시각보정
네! 저는 글자 디자이너입니다. 그리고 제 직업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저는 폰트를 만듭니다.'하고 소개하곤 해요.
하지만 글자를 그리고 폰트로 출시하는 것은, 제가 하는 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답니다. 일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타입 디자인을 수정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가 자주 있어요. 다른 디자이너들이 제게 디자인보다는 멘토링에 가까운 것을 요청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이들의 글자를 수정하면서 결국에는 로고타입* 보정을 하게 됩니다.
* 역자 주 : 로고타입(logotype)은 기업이나 상품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글자를 말합니다. 코카콜라나 페이스북의 로고를 생각하면 쉬울 것 같아요. 상징 그림으로 대표성을 띠는 심볼 디자인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 그거 그냥 리디자인하는 거 아닌가요?
— 아닙니다.
로고타입 보정이란 무엇일까요?
이런 상황을 상상해볼까요? 여러분이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로고타입을 만들게 되었어요. 하지만, 뭔가 이상해요. 형태는 기우뚱하고, 사용하는 서체와 어울리지 않고, 작은 사이즈에 적합하지 않아요. 보통 제가 투입되는 상황입니다.
로고타입 보정 과정을 알고 싶다면, 제가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드릴게요.
— 멋진 프로모션이군요.
— 감사합니다.
하지만 진지해요. 보정은 항상 필요합니다. 로고타입 보정이 필요하지 않은 유일한 상황은, 당신이 로고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뿐이에요.
그렇지만 보정을 할 사람을 따로 고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연습하고, 지식을 쌓고, 시간을 들임으로써 누구나 흠잡을 데 없이 로고타입을 보정할 수 있어요.
그래도 그 일을 할 누군가를 고용해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느 시점에 그들을 불러야 할까요? 스무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한 최적의 시점이 두 가지 있어요.
1. 로고가 완성되었지만 더 낫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걸 어떻게 할지 모르겠을 때.
2. 여러 가지 상황(사용되는 사이즈나 매체 환경 등)에 맞추어 보정해야 할 때.
저는 이런 종류의 작업에서 의뢰한 디자이너나 스튜디오를 존중해야 하며, 작업물은 제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어요. 또 모든 변화는 저의 기분이 아니라 근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 나는 브랜드 전략 그 자체가 아니라, 브랜드 전략이 시각화된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 디자이너나 스튜디오는 자신만의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작은 디테일 변화도 전체 브랜딩 프로젝트를 가로채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
- 이것은 보정 작업이지, 로고타입 디자인이 아니다.
제게는 약간의 자유가 주어지긴 하지만, 주어진 것들을 존중할 필요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 저는 이 작업에 창의성을 발휘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이미 해 두었기 때문이죠.
이들은 몇 달간 시간을 들인 결과물을 제가 '더 낫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로고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이고, 아마도 시간과 예산에 제약이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로고는 큰 프로젝트의 한 부분(하지만 매우 중요한)이겠죠.
형태는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인지된 상황이나 용도가 무엇이든 형태를 수정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모든 보정 과정에 걸쳐 형태 수정과 시각 보정을 하게 됩니다.
예시로 작은 케이스 스터디를 해볼까요. 스웨덴의 디자인 스튜디오 아이덴티티 웍스에서 스톡홀름에 위치한 'Hotel At Six'의 로고타입을 수정하기 위해 저를 고용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커스텀 타입페이스로 연결되는데, 이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첫 단계는 형태와 요소들을 전반적으로 바로 잡고, 곡선의 부드러움, 교차점, 간격, 획 굵기와 작은 디테일 등을 수정하는 것이었어요.
위의 이미지에서 보다시피, 클라이언트는 기존의 로고를 꽤 잘 만들었고, 목적에 거의 부합하는 로고타입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의 아트 디렉터와 저는 의견을 열심히 나누었어요. (언제나 친절하고 근면한 아트디렉터 Nuno Coelho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작은 차이가 있는 버전들을 테스트했고, 돋보기를 들여다보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이 과정에서 친환경적이지 않게도, 종이의 낭비가 많이 있었어요.
첫 단계는 시각적인 흐름이 부드럽도록 신경을 써서 조화로운 모양새가 되도록 애쓰는 것이었어요. 가장 눈에 띄는 디테일은 't'의 수줍은 아랫부분이었고, S도 너무 기하학적인 형태 그대로라 울퉁불퉁해 보였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잉크트랩* 작업을 하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이 들었어요. 다행히도 로고는 사이즈가 정해져 있었고, 저는 만족할만한 정확도로 최종 매체에 테스트할 수 있었어요. 획의 굵기, 교차점과 곡선은 제가 더 낫게 고칠 수 없을 때까지 수정되었습니다. 결과물은 비대칭적으로 아름다웠어요.
얇은 획을 작업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 됩니다.
얇은 획은, 래스터화*를 하며 변형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어요. 1/1000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마이크로 디자인의 특수 훈련이죠. 작은 텐션의 차이도 즉각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획 조정은 완벽해야 합니다. 글자의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엄격해져요. 그리고 이 것은 제가 작업을 하며 무척 재미있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죠.
* 역자 주
잉크트랩(ink trap)이란, 폰트가 작은 크기로 쓰일 때 획이 교차되는 부분이 뭉쳐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홈을 파서 시각적으로 보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래스터화(rasterizing)는 벡터(vector) 이미지를 래스터(raster)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래스터 이미지는 직사각형의 화소(pixel)를 통해 모니터에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비트맵(bitmap) 이미지라고도 합니다. 위치 값을 기억하는 벡터 이미지와 대응되는 개념입니다.
로고타입은 브랜딩 전략에 있어 다양한 매체와 크기, 프로세스로 배치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과 인쇄는 형식, 래스터화, 인쇄법, 종이, 소프트웨어, 화면 등을 뭉뚱그린 모호한 용어입니다. 이 외에도 변수는 끝이 없죠.
로고타입이 쓰이는 환경의 변수 중 가능한 많은 것들을 미리 결정하고, 특정한 상황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로고타입 보정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서 보정의 방식도 계속 바뀔 거예요, 언제나.
로고타입이 쓰이는 환경의 변수 중 가능한 많은 것들을 미리 결정하고, 특정한 상황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보정의 핵심
그건 다양한 응용물에서 완벽한 일관성을 확보하려 하는 것은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만드는 것을 열망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이것이 목표입니다.
모든 기술적인 제약과 현실 세상의 혼돈, 무결성에 대한 환상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에 근접하는 것만으로도 환영할만한 일이에요. 로고타입은 그래픽 조각의 세트이고,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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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또 봐요.
* 원문 https://learn.scannerlicker.net/2017/09/02/on-logotype-calibration/
* 매끄러운 흐름을 위해 의미를 해치지 않는 안에서 의역하였습니다. 오역 및 오탈자 수정 요청 등은 언제든지 환영하고 또 감사합니다. (holysilky@gmail.com)
역자 생각
보정을 통해 완성된 로고타입의 디테일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저는 처음에 모바일로 글을 읽으며 당황했어요. 낮은 해상도에서는 변화된 디테일의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거든요. 다급히 컴퓨터를 켜서 확인해보니(제 눈이 기능을 다한 줄 알구요), 몇 가지 탁월한 점이 보였습니다.
S 쉐이프의 경우, 기하 도형의 딱딱함을 탈피하기 위해 곡선을 부드럽게 조정한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제가 한글 활자를 디자인할 때 신경 쓰는 부분과 비슷하기도 했고요. 언어는 다르지만, 조형 원리는 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보정이 한글 타입 디자인에서는 어떻게 적용하였는지 궁금하신가요? 나중에 한글 타입의 곡선과 속공간 관련해 글을 한 편 써볼까 해요. 왼쪽은 저의 레터링 초안이고, 오른쪽은 폰트로 옮겨가며 변화한 과정입니다.
의뢰를 받아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본받을만한 것 같아요.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제작물을 함부로 평가하기보단, 클라이언트의 생각을 존중하고 의도와 제작 환경을 고민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방식이요. 타인의 영역을 존중하고, 나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바람직한 태도인 것 같습니다.
한 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클라이언트가 하이엔드 브랜드를 운영하는데 comic sans나 굴림체로 로고를 만든 후 ‘보정’을 부탁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단 우황청심환 한 알 먹고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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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y
글자와 그림을 사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브랜드, 타이포그래피, 현대 미술을 포함한 기호의 총체에 관심이 있으며, 몇 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브랜딩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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