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지지직’이 더 불안했던 밤

핑크 노이즈가 렘수면을 줄일 수 있었다

by 전의혁

아무것도 하기 싫은 밤이 있다.


불을 끄고도 한참을 뒤척이던 날이었다.
창밖 소음이 신경 쓰여서, 나는 휴대폰을 켜고 수면 앱을 눌렀다.
화면엔 ‘핑크 노이즈’가 떴고, 방 안엔 TV 채널이 비었을 때 같은 ‘지지직’이 얇게 깔렸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잠을 지키려는 몸의 방어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피곤한 날일수록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조용함이 오히려 불편해서, 무언가를 틀어 놓고 잠드는 편인가?


잠은 조용히 돕는다고, 늘 안전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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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학술지 ‘수면(Sleep)’에 실린 임상시험 결과는 그 ‘유행’에 조용히 제동을 걸었다.
연구진은 핑크 노이즈(pink noise)가 수면을 돕는 대신, 수면 중 뇌 활동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핑크 노이즈를 들은 사람들은 렘수면(REM) 시간이 줄었다.
연구진은 50 데시벨의 핑크 노이즈가 렘수면을 약 19분 줄이는 것과 연관돼 있음을 확인했다.


핑크 노이즈는 렘수면을, 항공기 소음은 깊은 수면을 깎았다.


렘수면은 꿈이 나타나는 단계로만 알려져 있지만, 역할이 그보다 넓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정신의학과의 수석 연구자 마티아스 바스너 박사는 렘수면이 기억 공고화, 감정 조절, 뇌 발달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결과는 특히 어린이에게 더 조심스럽게 읽힌다.
바스너는 뇌가 아직 발달 중이고, 성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렘수면에서 보내는 어린이에게는 핑크 노이즈와 다른 형태의 광대역 소음이 더 해로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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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수면과 렘수면은 서로 번갈아 오가며 밤을 만든다.
연구진은 깊은 수면이 신체 회복과 뇌의 독소 제거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렘수면은 기억 저장과 감정 조절 같은 인지 기능에 중요하다고 했다.


둘이 함께 돌아가야, 아침이 조금 덜 무너진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수면 실험실에서 21~41세의 건강한 성인 25명을 7일 연속 관찰했다.
참가자들은 수면을 돕기 위해 소음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수면 장애도 없다고 보고했다.


참가자들은 항공기 소음 및/또는 핑크 노이즈에 노출되는 조건에서 잠을 잤다.
또 다른 조건에서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귀마개를 착용했다.
핑크 노이즈는 여러 주파수가 섞인 연속 소리로, 빈 TV 채널의 정적처럼 들린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결과는 구체적이었다.
항공기 소음에 노출되면 깊은 수면이 약 23분 감소했다.
핑크 노이즈와 항공기 소음이 함께 있을 때는 깊은 수면과 렘수면 모두가 방해를 받았고, 깨어 있는 시간은 약 15분 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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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느낀 밤도 비슷했다.
핑크 노이즈 또는 항공기 소음 중 어느 하나에 노출됐을 때, 수면이 더 얕게 느껴졌고 더 자주 깼으며 전반적인 수면 상태가 더 나빴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귀마개를 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연구진에 따르면 귀마개는 교통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수면을 보호했고, 수면 주기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두 종류 소음의 영향도 귀마개를 착용하면 사라졌다.


이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잘 자려고 틀어 둔 소리’가 정말 내 편이었을까.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백색소음기와 수면 앱의 광범위한 사용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바스너는 광대역 소음 사용에 주의를 촉구했고, 특히 신생아와 유아에서 그렇다고 밝혔다.


또한 바스너는 취약 집단에서의 연구, 장기 사용, 광대역 소음의 다양한 ‘색깔, 그리고 수면과 관련해 안전한 광대역 소음 수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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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렘수면 교란이 우울증, 불안, 파킨슨병 같은 질환에서 흔히 관찰되는 특징이라고도 지적했다.
아이들은 렘수면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핑크 노이즈의 부정적 영향에 특히 취약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거창한 처방이 아니다.
오늘은 ‘틀기’보다 ‘막기’를 먼저 떠올려본다.


특히 신생아와 유아에게는, 유행보다 안전이 먼저일 수 있다.
다만 수면 환경이나 증상은 개인차가 크니, 걱정이 계속되면 내 상황에 맞게 의료진이나 약사와 상의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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