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피부와 20대의 뇌를 동시에 바라본 한 연구 이야기
약국에서 일할 때였다.
“여드름이 너무 심해서요. 애가 요즘 밖에 나가질 않아요.”
엄마는 처방전을 내밀며 한숨을 쉬었고,
옆에 서 있던 고3 아들은 마스크 위로 눈만 내리고 있었다.
처방전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독시사이클린(doxycycline).
청소년 보통여드름에 흔히 쓰는 광범위 항생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약을
“피부에 좋은 항생제” 정도로만 생각했다.
얼마 전, 이 약이 전혀 다른 곳—뇌와 마음—과도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연구를 읽기 전까지는.
에든버러대학교 연구진은
핀란드 청소년 5만 6,000명 이상의 기록을 꺼내 들었다.
1987~1997년에 태어나
10대 때 이미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있고,
그 시기에 항생제를 처방받은 적이 있는 아이들.
이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
여드름 등으로 독시사이클린을 복용한 그룹,
그리고 다른 종류의 항생제를 쓴 그룹.
그 뒤 10년 동안 이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 보니
차이가 나타났다.
다른 항생제를 쓴 그룹에서
이후 조현병 진단을 받은 비율은 2.1%.
독시사이클린을 쓴 아이들은 1.4%.
대략 30~35% 정도
조현병 발생 위험이 낮았던 셈이다.
조현병은 전 세계 2,30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무거운 정신질환이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에 진단되고,
망상, 환각, 와해된 사고, 극심한 초조,
사람들과의 단절이 갑작스레 밀려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증을 앓는 사람의 3분의 2 이상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위험을 30% 줄일지도 모르는 약”이라는 말은
아주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무겁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여드름 항생제 먹으면 조현병 안 걸린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다.
연구진도 스스로 말한다.
인과관계를 확정적으로 입증한 것이 아니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그럼에도 이 약이 왜 이런 연관성을 보였는지
가능한 설명을 조심스럽게 던진다.
독시사이클린은 단순히 세균만 죽이는 게 아니라
면역 반응, 염증, 세포 자멸사(programmed cell death)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어쩌면 조현병 발병에 관여하는
어떤 감염성 요인을 몸과 뇌에서 줄이고 있을지도,
혹은 뇌 염증과 뇌 연결망(brain wiring)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힌트는 다른 연구에서도 보인다.
미노사이클린(minocycline)이라는 항생제는
2019년 줄기세포 연구에서
조현병 환자의 세포에서 나타나는
“시냅스 과도 가지치기(excessive pruning)”를 줄일 수 있다는
결과를 보였다.
미노사이클린과 독시사이클린은
둘 다 테트라사이클린 계열 항생제다.
작용 방식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2024년 덴마크 연구에서는
뇌로 침투할 수 있는 이 계열 항생제를 쓴 조현병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장애연금을 받게 되는 비율이 낮았다는 결과도 나왔다.
병이 삶을 얼마나 무너뜨리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다.
핀란드 데이터를 더 들여다본
이언 켈러허 팀은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했다.
전체 인구에서 진단된 정신증 장애의 거의 절반이
이미 청소년기에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 있는
그 아이들에서 나왔다는 것.
그는 여기를 “기회 창”이라고 불렀다.
이미 불안, 우울, 자해 충동 등으로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서비스를 찾은 아이들.
이 가운데 일부는 앞으로 조현병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 진행을 확실히 늦추거나 막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독시사이클린 같은 약이
이 고위험군에서 위험률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다면,
그건 완전히 새로운 정신질환 “예방”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연구가 말해 주는 건
“여드름약으로 조현병을 치료하자”가 아니라,
조금 다른 메시지에 가깝다.
청소년기의 마음과 몸,
뇌와 면역, 염증과 감염이
생각보다 훨씬 더 깊게 얽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미 도움을 요청하러 정신건강 서비스를 찾아온
그 아이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새로운 예방 개입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과 대상이라는 것.
약국 카운터 너머로
여드름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고3 아이가
문득 다시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그 약을
“피부를 위한 선택”이라고만 설명했다.
이제 같으면 아마 이렇게 한마디를 더 보태고 싶다.
“이 나이에 피부 때문에 힘든 것도 참 크지만,
사실은 마음과 뇌도 같이 지켜야 할 때예요.
과학은 지금,
청소년기의 이런 작은 치료들이
몇 년 뒤의 정신 건강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조심스럽게 따라가 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가능성의 초안에 불과하지만,
그 초안이 언젠가
한 사람의 인생을 비껴가게 만드는
조용한 방패로 완성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