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옆에서, 기억을 생각했다

80대의 또렷함 뒤에는 해마의 ‘새 뉴런’이 있었다

by 전의혁

이름이 입 끝에서 맴도는 순간이 있다.
입술을 한 번 더 굴려보는데도, 끝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식탁 끝에 메모장을 펼친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작게 나고, 스탠드 불빛이 손등을 노랗게 만든다.
“아, 그 사람 누구였지”를 적어두는 일이 요즘은 부쩍 잦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기억이 흔들릴까 봐 미리 붙잡아두려는 마음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하루가 길었던 날에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검색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같은 단어를 두 번 치는 편인가?


20260228 _ 슈퍼에이저 뇌, 80대에도 새 뉴런 두 배 _ 2.png


그런데 어떤 80대는 20대만큼이나 기억이 날카롭다.
연구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슈퍼에이저’라고 부른다.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건, 그 또렷함이 단지 “운이 좋은 상태”로만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밀은 성인 신경발생이었다.
신경발생은 새로운 뇌세포가 자라는 과정으로, 보통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슈퍼에이저의 뇌는 또래보다 훨씬 더 “뉴런 생성에 비옥”했다.


해마, 그러니까 기억의 중추에서 슈퍼에이저는 건강한 다른 고령 성인보다 두 배의 속도로 새로운 뉴런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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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모장 한쪽에 작은 별표를 그려두고, 다음 줄을 읽었다.
연구진은 기증된 뇌 샘플을 다섯 집단에서 모아 비교했다.
건강한 젊은 성인, 건강한 고령 성인, 80세 이상이면서 기억이 탁월한 슈퍼에이저가 포함됐다.
여기에 경도 또는 초기 치매, 알츠하이머병 진단군을 나란히 두었다.
슈퍼에이저 샘플은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그 밖의 샘플은 워싱턴 대학교에서 제공됐다.


연구자들이 확인한 건 ‘지금 자라고 있다’는 증거였다.
해마에서 줄기세포, 신경모세포, 미성숙 뉴런이라는 세 단계의 징후가 보이면, 새 뉴런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연구진은 이를 세포 세계의 “아기, 유아, 십 대”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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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에이저는 신경발생이 두 배였다.


대비는 더 분명했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 단계로 설명되는 인지 저하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는 신경발생이 최소 수준이었고,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된 뇌에서는 새로운 뉴런 생성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신경발생의 소실이 인지 실패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그림이 선명해진 셈이다.


회복탄력성 시그니처는 수사가 아니라, 뇌 안에서 관찰된 차이였다.


흥미롭게도 새로 생성된 뉴런은 후성유전학적 시그니처도 달랐다.
환경 변화와 스트레스에 반응하기 위한 청사진이 뇌의 인지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져 보였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다음 단계로 식이, 운동, 염증 같은 요인이 신경발생과 함께 노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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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이 길어진 시대에, ‘얼마나 오래’보다 ‘어떻게 또렷하게’가 더 자주 마음에 걸린다.
연구의 제1저자 아흐메드 디수키는 이번 연구가 노화하는 뇌가 고정되어 있거나 쇠퇴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당신이 자꾸 확인하는 건 예민해서가 아니라, 기억을 지키고 싶어서일 수 있다.


오늘 메모장을 덮으면서, 나는 한 문장을 남겨두고 싶다.
혹시 약이나 치료가 떠오르는 순간이 오면, 그 결정만큼은 혼자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의료진이나 약사와 함께 천천히 맞춰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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