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얕아진 날, 혈당이 달라졌다

고산지대의 산소 부족이 적혈구를 '포도당 스펀지'로 만든다

by 전의혁

검사 결과 숫자가 마음을 흔드는 날이 있다.


점심 직후 약국 카운터에 혈당측정기를 올려놓는다.
손끝에 남은 알코올 솜 냄새를 한 번 더 맡는다.
"오늘은 왜 이럴까" 같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간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다.
매일 '조절'이라는 과제를 안고 사는 긴장에 가깝다.


혈당 관리는 당뇨병 치료의 핵심이다.
목표는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혈당 수치를 일정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을 동원한다.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하고, 필요하면 약도 곁들이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
"운동하자"나 "약을 바꾸자"가 아니다.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적혈구가 혈액 속 포도당을 스펀지처럼 더 많이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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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가 줄어들면, 적혈구가 포도당을 더 가져간다


학술지 《세포 대사》에 실린 연구에서 연구진은 고산지대처럼 산소가 부족한 환경을 만들어 생쥐를 관찰했다.


그 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혈당 수치가 빠르게 떨어졌다. 혈당 조절 능력이 좋아졌다.
당뇨 모델에서 높았던 혈당이 정상에 가깝게 돌아왔다.


그런데 근육, 뇌, 간만으로는 "사라진 포도당"을 다 설명할 수 없었다.
정밀 영상 분석을 해보니 빠진 조각이 적혈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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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구는 산소만 나르는 줄 알았는데, 혈당도 건드렸다


연구팀은 적혈구가 포도당을 더 많이 흡수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오래 머물면 적혈구 수 자체가 늘어난다.
그만큼 혈액 전체가 처리할 수 있는 포도당의 양도 커진다.


둘째, 적혈구 하나하나도 더 많이 흡수한다.
산소가 부족하면 적혈구 안에서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끌어들이는 단백질(GLUT1)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적혈구는 흡수한 포도당을 빠르게 분해해 '2,3-DPG'라는 물질을 만든다.
이 물질은 혈액이 온몸 조직에 산소를 더 잘 전달하도록 돕는다.


즉, 산소가 부족할수록 → 산소를 잘 전달하기 위해 → 포도당을 더 끌어온다는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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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산에 가면 혈당이 좋아진다"는 말이 맞을까


아직은 그 단계가 아니다.


연구진도 "사람에게 얼마나 강하고 오랜 저산소 노출이 필요한지 모른다"라고 선을 그었다.
고산지대와 저지대 사람들 사이에는 식습관, 운동량, 유전, 의료 환경 같은 차이도 함께 존재한다.


특히 모든 당뇨병 유형에 같은 방식으로 맞지 않는다.
1형 당뇨병 환자는 혈당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저혈당 위험이 더 높다.
고산지대에서 운동할 경우 그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인슐린 치료를 받는 사람은 몸이 반응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고지대 활동을 계획한다면 반드시 의료진과 먼저 상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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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으로 '산 효과'를 흉내 낼 수 있을까


연구팀은 실제로 고산지대에 가지 않아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약물을 시험했다.


'하이폭시스타트(HypoxyStat)'라는 소분자 약물이다.
헤모글로빈이 산소에 결합하는 방식을 바꿔 마치 산소가 부족한 환경처럼 몸이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당뇨 생쥐 모델에서 높은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확인됐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 동물 실험 단계다.
사람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지는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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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잡을 수 있는 건 고도가 아니라 '해석'이다


혈당이 흔들리는 날, 내 몸이 혼자 못 버텨서가 아닐 수 있다.
산소 같은 환경 조건에 반응하며 혈당을 지키려 애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더 세게'보다 '더 안전하게'가 먼저다.
치료나 생활습관을 바꾸고 싶어질 때는 안전을 앞에 두자.
내 상황에 맞는 선택은 의료진, 약사와 상의하면서 천천히 정리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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