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검진이 혈당 위험을 먼저 잡을 수도 있다
아픈 데가 없어도 치과 예약을 미루는 날이 있다.
오후 진료가 끝날 무렵, 유리컵에 담긴 물은 미지근해지고 대기실 소독약 냄새가 옅게 남아 있다.
나는 스케일링 안내문을 한 번 읽고, 혀끝으로 잇몸을 슬쩍 건드려본다.
피가 조금 났던 날이면 괜히 모른 척하고 싶어진다.
그건 무심함이 아니라, 아직 병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대수롭지 않은 피로쯤으로 넘기고 싶을 때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치과를 그저 이를 닦고 끝나는 곳쯤으로 생각한 적이 있나?
이번 연구는 그 익숙한 생각을 조금 바꾼다.
이번 연구는 치과 진료실에서, 아직 진단되지 않은 혈당 이상을 먼저 알아챌 수 있는지 살핀 연구다.
연구진은 치과 검진을 받은 900명 이상의 환자에게 손끝 채혈로 당화혈색소 검사를 함께 했다.
이 검사는 금식이 필요 없고, 최소 6분이면 혈액 속 당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생각보다 문은 가까운 데 있었다.
연구진은 환자 3명 중 1명 이상에서 당뇨병 또는 당뇨병 전단계에 해당하는 혈당 상승을 확인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약 29%가 당뇨병 전단계를 시사하는 수치였고, 7%에서는 명확한 당뇨병이 확인됐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누구도 검사 전에는 당뇨병 병력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모른 채 지나가던 수치가, 치과 의자에서 처음 드러난 셈이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치주 전문의이자 연구원인 주세페 마이나스 박사는, 치과 방문이 당뇨병 위험군을 확인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령 환자, BMI가 높은 사람, 잇몸질환이 있는 사람에서 더 그렇다고 했다.
BMI는 키와 체중으로 체지방을 추정하는 체질량지수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치과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입을 벌리고 누워 있는 짧은 시간에, 충치나 치석만이 아니라 대사 건강의 실마리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주저자인 마크 아이디 박사는,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게 나오면 환자가 일반의를 찾아 추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치과 선별검사가 없었다면, 많은 사람이 그다음 확인으로 이어가지 못했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연구의 많은 환자들은 자신의 수치가 올라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당뇨병 전단계나 당뇨병일 수 있다는 점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놀라운 건 입안과 혈당이 따로 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혈당 수치가 더 높은 환자일수록 잇몸질환이 더 중증인 경향도 함께 보였다.
수석 연구자 루이지 니발리 박사는 잇몸질환과 대사 건강의 관계가 양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염증 과정이 대사 시스템을 바꿀 수 있고, 대사 시스템도 다시 염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잇몸질환은 당뇨병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 연결은 멀리 있는 의학 정보라기보다, 몸의 여러 신호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생활의 감각에 더 가깝게 들린다.
몸은 생각보다 칸칸이 나뉘어 있지 않다.
이를 닦는 일과 혈당을 보는 일은, 전혀 다른 서랍에 들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먹는 습관과 대사 문제는 입안에도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잇몸의 염증이 몸 전체와 이어진다는 말이 낯설어도, 실은 꽤 생활에 가까운 이야기다.
연구진은 다음 단계로 이 혈액검사를 다른 의료 환경에서도 쓸 수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고 했다.
또 식단 같은 생활습관 요인이 혈당 수치와 잇몸질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더 조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니 다음 치과 예약을, 미루지 못한 하루쯤으로 생각해도 좋겠다.
입안이 보내는 신호를 너무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면, 그건 예민한 게 아니라 오래 놓치고 있던 것일 수 있다.
수치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그다음 확인은 치과의사나 의료진과 천천히 이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