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스테롤 숫자 하나가 바꾸는 순서의 문제
아버지가 처음 쓰러졌을 때, 의사가 말했다.
"이제부터 강한 약 쓰겠습니다."
이제부터.
그 말이 이상했다.
왜 '이제부터'인지, 왜 '이전에'가 아닌지.
아버지는 당뇨병을 10년 넘게 달고 살았다.
혈당은 꾸준히 관리했고, 스타틴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심장마비가 먼저 왔다.
심장마비가 온 뒤에야 더 강한 약이 처방됐다.
이게 지금까지의 방식이었다.
강력한 콜레스테롤 약은 심장마비 '이후'의 약이지, '이전'의 약이 아니라는 것.
의학계가 수십 년간 지켜온 순서다.
그 순서가 틀렸을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VESALIUS-CV라는 이름의 대규모 임상시험이다.
당뇨병은 있지만 심장병 병력은 없는 환자 3,655명이 참여했다.
중앙 연령 65세.
이미 스타틴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다.
연구팀은 절반에게 에볼로쿠맙이라는 주사제를 추가했다.
PCSK9 억제제라 불리는 약으로, 간이 나쁜 콜레스테롤을 더 빨리 걸러내게 돕는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위약을 줬다.
96주 뒤, 약을 맞은 그룹의 LDL 콜레스테롤이 111에서 44로 떨어졌다.
44mg/dL.
이건 심장마비를 이미 여러 번 겪은 사람에게 잡는 목표치다.
아직 심장마비가 한 번도 없었던 사람에게서 나온 숫자라는 게 의미가 있다.
심장병 사망, 심장마비, 뇌졸중을 합친 주요 심혈관 사건 위험이 31% 줄었다.
1년이 지나면서 그 격차는 40%까지 벌어졌다.
오래 쓸수록 효과가 쌓였다.
부작용으로 약을 끊은 비율은 치료 그룹 4.1%, 위약 그룹 4.3%. 거의 같았다.
브리검여성병원의 니콜라스 마스턴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동맥경화가 생길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훨씬 더 적극적으로, 훨씬 더 일찍 치료해야 한다고.
물론 한계는 있다.
참가자의 93%가 백인이었고, 당뇨병 환자만 대상으로 했다.
모든 참가자에게 관상동맥 영상검사를 하지는 않아서, 일부는 이미 혈관에 조용히 쌓인 플라크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연구가 묻는 질문은 분명하다.
심장마비가 오기 전에 막을 수 있는데, 왜 온 뒤에야 강한 약을 쓰는가.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에 이 약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당뇨병이 있고 콜레스테롤이 걱정된다면, 다음 진료 때 담당 의사에게 LDL 목표치를 한번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약을 바꾸거나 추가하는 건 반드시 의료진과 함께.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