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낫는다는 병이 15년 뒤 심장에 남는다는 이야기
채혈실 복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걷어올린 셔츠 소매에 알코올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팔꿈치 안쪽의 솜뭉치가 조금씩 배어 나왔다.
앞자리에 쉰 중반쯤 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거칠었다.
핸드폰을 넘기다 한 기사에 시선이 멈췄다.
미국에서 매독 환자의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이 뚜렷하게 높다는 연구였다.
뉴올리언스 병원 세 곳에서 1,500명을 15년 동안 추적했다고 했다.
대동맥류 위험 2배.
뇌출혈 위험 92%.
심장마비 위험 31%.
숫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그 숫자 앞에서 잠깐 멈췄다.
매독은 멀리 있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에서나 보는 옛날 단어 같은 거.
그런데 기사에는 미국에서 5년 사이 환자가 80% 넘게 늘었다고 적혀 있었다.
옆에서 간호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쉰 중반 남자가 일어나 진료실 쪽으로 걸어갔다.
걸을 때 오른쪽 다리를 조금 끌었다.
연구자의 말이 기사에 인용되어 있었다.
매독으로 생긴 심혈관 손상은 매독 치료가 끝난 뒤에도 남을 수 있다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아버지가 환갑 무렵부터 작은 뇌경색을 두 번 겪었다.
그때 의사들은 고혈압 때문이라고 했고,
담배 때문이라고 했고,
나이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도 "옛날에 앓은 병이 있으셨나요"라고는 묻지 않았다.
나도 아버지에게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
그 세대 남자에게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혹시 당신 주변에 원인을 모른 채 심장이나 혈관이 상한 사람이 있나.
기사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매독 초기에는 성기 부위에 통증 없는 작은 상처가 생기고,
저절로 사라진다고. 그
래서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친다고.
페니실린 한 방이면 낫는 경우가 많다고.
종합검진 항목표를 가방에서 꺼내 다시 펼쳤다.
맨 아래 줄에 VDRL이라고 쓰여 있었다.
평소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글자였다.
복도 저쪽에서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의자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결과지가 오면, 이번엔 맨 아래 줄까지 읽어봐야겠다고.
[출처]
Tsakiris E, Feng H, Bidaoui G, et al. Adverse Cardiovascular Outcomes in Patients With Syphilis. JAMA Netw Open. 2026;9(4):e266771. doi:10.1001/jamanetworkopen.2026.6771
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networkopen/fullarticle/2847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