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칫하는 몸, 엔진 오일이 부족한 날

도파민은 ‘속도’가 아니라 ‘움직임이 되게 하는 바탕’ 일 수 있다

by 전의혁

어느 날은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출근길 계단 앞에서 잠깐 멈췄다.
발끝이 먼저 나가야 하는데, 마음이 한 박자 앞서고 몸이 뒤따랐다.
나는 그 짧은 지연을, 괜히 컨디션 탓으로 넘기곤 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시스템이 버벅거리는 느낌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피곤한 날에 더 또렷했다.
혹시 당신도 “속도가 느려진 게 아니라, 시작이 어려운 날”을 겪고 있나?


맥길대 연구진이 주도한 연구가, 도파민을 바라보는 오래된 시선을 흔든다.
'네이처 신경과학’에 게재된 이 연구는 도파민이 각 움직임의 속도나 힘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저 지지 시스템’처럼 작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도파민은 ‘속도 조절기’가 아니라 ‘움직임을 지지하는 시스템’ 일 수 있다.


20251223 _ 도파민 역할 재해석, 파킨슨 치료가 달라질까 _ 2.png


책임저자 니콜라스 트리치는 “움직임에서 도파민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파민을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움직임을 개선하기에 충분할 수 있으며, 그 점이 파킨슨병 치료를 바라보는 관점을 단순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파민은 ‘운동 활력’, 즉 힘과 속도를 갖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킨슨병 환자에서는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가 퇴화하면서 움직임이 느려지고, 떨림과 균형 문제가 나타난다.
그리고 표준 치료인 레보도파(Levodopa)는 움직임 회복에 도움을 주지만, 왜 효과가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에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빠른 도파민 스파이크를 탐지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스파이크가 운동 활력을 조절한다고 믿게 됐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연구진은 쥐가 무게가 있는 레버를 누르는 동안 뇌 활동을 측정했다.
빛 기반 기술로 도파민 세포를 ‘켜거나’ ‘끄는’ 방식으로 조작했다.
만약 빠른 도파민 폭발적 분비가 운동 활력을 통제한다면, 그 순간 도파민을 바꾸면 움직임이 더 빠르거나 더 느려져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대신 달라진 건 기저선이었다.
레보도파 실험에서 연구진은 이 약이 빠른 폭발 신호를 복원해서가 아니라, 뇌의 기저선 도파민 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요약에 적힌 문장이 결국 이 연구의 핵심을 정리한다. 순간 스파이크가 아니라 기저선 도파민을 회복하는 것이 움직임을 개선했다는 것.


트리치는 도파민을 스로틀(throttle)이라기보다 엔진 오일(engine oil)에 비유했다.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각 행동이 얼마나 빠르게 수행되는지를 결정하는 신호는 아니라는 뜻이다.
‘속도’가 아니라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가깝다는 말이다.


20251223 _ 도파민 역할 재해석, 파킨슨 치료가 달라질까 _ 2-1.png


이 해석이 달라지면, 치료의 초점도 달라질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11만 명 이상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고, 고령화로 2050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연구는 전했다.
저자들은 레보도파가 왜 효과적인지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기저선 도파민 수준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기존 치료를 다시 보는 시선도 포함된다.
도파민 수용체 작용제는 가능성을 보였지만, 뇌에서 너무 광범위하게 작용해 부작용을 일으켰다.
이번 발견은 더 안전한 버전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언급했다.


나는 이런 연구를 읽을 때마다, 몸을 다그치던 습관을 잠깐 멈춘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작동을 지지하는 바탕’이 흔들리는 날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몸을 몰아붙이는 대신, 내 움직임의 바탕을 살피는 쪽을 선택해 본다.
증상이나 치료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결정을 혼자 서두르기보다 의료진과 상의하는 편이 안전하다.

작가의 이전글향이 달라져도, 니코틴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