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 번 땅콩, 엄마의 뇌를 위한 작은 실험

노인의 뇌 혈류와 기억력이 살짝 달라진, 60g 땅콩 이야기

by 전의혁

얼마 전, 엄마 집 식탁 위를 보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
혈압약, 콜레스테롤약, 비타민 알약은 줄 세워져 있는데, 간식이라고는 오래된 약과 몇 개뿐이었다.


“엄마, 요즘 집에서 뭐 드셔?”
“밥 먹지, 뭐. 나이 들어서 간식은 줄여야지.”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넘기다가 이런 제목을 만났다. “하루 2회 땅콩 섭취가 노인의 뇌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루 2회.
땅콩.
노인.
뇌 건강.
딱 우리 엄마 얘기 같았다.


연구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병원에서 진행됐다.
60~75세, 대체로 건강하고 체중도 안정적인 남녀 31명이 조용한 실험에 참여했다.
당뇨병이나 심장병, 땅콩 알레르기처럼 결과에 영향을 줄 만한 병이 있는 사람은 애초에 뺐다.


먼저 16주 동안은 땅콩도, 다른 나무 열매도 일절 먹지 않는 기간을 보냈다.
그다음 8주를 쉬고, 또 다른 16주 동안은 연구진이 건넨 소금 무첨가 껍질째 구운 땅콩 60g을, 하루 2회 분량으로 매일 꾸준히 먹었다.


그 사이사이, 참가자들은 연구센터를 찾아 혈압을 재고, 피를 뽑고, 식단을 기록했다.
각 16주가 끝날 때마다 MRI로 뇌를 들여다보고, 단어를 외우는 기억력 테스트도 했다.
말 그대로 “땅콩이 없는 뇌”와 “땅콩이 있는 뇌”를 번갈아 비교해 본 셈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땅콩을 먹었던 기간, 참가자들의 뇌에는 피가 조금 더 잘 돌았다.
뇌 전체 혈류는 약 3.6% 늘었고, 생각이 오가는 회색질 안쪽은 약 4.5%가 늘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더 흥미롭다.
결정하고 계획하는 전두엽으로 가는 혈류는 6.6% 증가했고, 기억과 언어를 다루는 측두엽은 4.9% 늘었다.


숫자만 보면 “고작 몇 퍼센트”다.
하지만 우리 몸은 이런 몇 퍼센트의 차이가 쌓여 “살짝 더 선명한 하루”를 만드는 지도 모른다.


기억력 검사에서는, 땅콩을 먹었을 때 참가자들이 단어를 평균 한 개 더 정확히 기억했다.
겨우 한 단어.
그런데 나이를 생각해 보면, 그 한 단어가 가벼운 건 아니다.
오랫동안 함께 산 배우자의 이름일 수도 있고, 멀리 사는 손주의 이름일 수도 있고, 방금 의사가 설명해 준 약 이름일 수도 있다.


땅콩을 먹은 기간에는 수축기 혈압, 그러니까 혈압계에서 위에 찍히는 숫자도평균 5mmHg 정도 내려갔다.
의사들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위험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하는 바로 그 숫자다.


왜 하필 땅콩일까.
연구팀이 주목한 건 땅콩에 들어 있는 영양소다.
단백질, 심장과 혈관에 도움이 되는 건강한 지방, 혈관 기능을 돕는 폴리페놀과 항산화 물질, 그리고 혈류 조절에 관여하는 아미노산인 L-아르기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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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실험에서 사용한 땅콩은 껍질째 구운 형태였다.
작은 붉은 껍질 안에는 섬유질과 단백질, 항산화 화합물이 더 들어 있기 때문이다.
껍질을 벗겨 버리면 같이 버려지는 것들이다.


물론, 이 연구 하나만으로 “땅콩이 치매를 치료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참가자는 고작 31명, 게다가 전반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만 골라 넣었다.
연구 기간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신경과학자 토미 우드 박사는 “식이 연구치고 잘 설계된 교차 연구지만, 표본이 작아 통계적 힘은 떨어진다”라고 평했다.
그래도 폴리페놀이 풍부한 음식이 혈관 건강을 지지할 수 있다는 기존 근거에 하나를 더 얹어 주는 연구라고 했다.
미국의 내과 전문의 에드먼드 하키미 역시 무작위·대조 설계에 MRI 같은 객관적 지표를 쓴 점을 장점으로 꼽으면서도, 더 다양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점.
이번 연구는 피넛 인스티튜트 재단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다행히 연구진이 설계와 분석을 통제했다고 명시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땅콩이 스폰서인 연구”라는 사실을 알고 읽는 편이 정직하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땅콩이 답일 수는 없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땅콩은 ‘뇌 건강 음식’이 아니라 위험 그 자체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전문가들은 땅콩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다크 초콜릿, 베리류, 호두나 아몬드 같은 다른 나무 열매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결국 이 연구가 말하는 메시지는 내게 이렇게 들렸다. “알츠하이머 치료법이 아직 없는 시대에, 우리가 손으로 집어 들 수 있는 작은 간식 한 줌이뇌 혈류와 기억, 혈압에 ‘조금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오늘 저녁 장을 볼 때 과자 대신 땅콩 봉지 하나를 장바구니에 넣는 정도의 선택.
부모님을 위해, 혹은 미래의 나를 위해한 번쯤 해 볼 만한 실험이다.


다음 주말, 나는 엄마 집에 갈 때 소금 안 뿌린 껍질째 구운 땅콩을 한 봉지 사 갈 생각이다.
식탁 위 약봉지들 옆에 작은 유리병을 하나 놓고, 그 안에 땅콩을 채워 넣을 거다.


그리고 쪽지 한 장을 붙인다. “하루 두 번, 뇌를 위한 간식.”
엄마가 그 병을 열어 땅콩을 집어 드는 순간, 엄마의 전두엽과 측두엽으로 오늘도 피가 조금 더 잘 흘러가기를 조용히 바라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