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TV 볼륨과 치매 이야기

듣는 힘과 뇌 건강의 숨은 연결고리

by 전의혁

주말에 본가에 갔더니, 거실 TV 소리가 벽을 울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뉴스 채널을 보고 계셨다.


“아빠, 볼륨 너무 큰 거 아니야?”
“야,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소곤소곤 말하냐. 나이 들면 귀 좀 안 들릴 수도 있지.”


우리는 늘 그렇게 웃어넘긴다.
연령 관련 청력 손실, 그러니까 나이가 들면서 양쪽 귀의 청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걸
그저 “나이 탓” 정도로만 여긴다.


하지만 그날 밤, 치매와 청력에 관한 한 논문을 읽다가
나는 아버지의 TV 리모컨을 떠올렸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지금 전 세계에서 치매를 앓는 사람은 약 5,700만 명.
매년 1,000만 명이 새로 진단된다.
확실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혈압, 콜레스테롤, 교육 수준, 사회적 고립, 알코올, 흡연 같은
“수정 가능한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최근 목록에 자꾸 이름을 올리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청력 손실이다.


연령 관련 청력 손실은 미국 기준으로 70세 이상 성인의 약 3분의 2를 건드린다.
12세 이후에는 10년이 지날 때마다 유병률이 두 배로 늘어난다.
예전에는 비교적 양성, 그냥 나이 들면 오는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청력 손실이 사회적 고립, 인지 기능 저하 같은
좋지 않은 결과와 짝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 준다.


미국 의사협회 저널(JAMA Network Open)에 실린 새 연구는
이 연령 관련 청력 손실이 치매 위험 71% 증가와 연결되어 있고,
보청기 사용이 이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연구에는 프레이밍햄 심장 연구 코호트의 2,178명이 참여했다.
2~4년마다 건강 검진을 받는, 세대를 이어 온 장기 인구 연구다.


연구진은 이들을 부분적으로 겹치는 두 하위 그룹으로 나눴다.
평균 연령 58세 그룹에서는 청력과 MRI, 인지 검사 결과의 연관성을,
평균 연령 67세 그룹에서는 시작 시점의 청력과 이후 15년 넘는 기간의 치매 발생을 살폈다.


모든 참가자는 첫 방문에서 청력 검사를 받았다.
결과에 따라 정상, 경도 미만(slight), 경도(mild), 중등도~중증 청력 손실로 분류됐다.
첫 번째 하위 그룹에서는 4년 또는 8년 뒤에 MRI와 인지 검사를 다시 했다.


MRI는 전체 뇌 용적과 백질의 손상을 평가했다.
백질은 신경세포 사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섬유 다발이다.
여기 생기는 이상과 뇌 용적 감소는 치매의 바이오마커로 사용된다.


결과는 꽤 명확했다.


청력 손실 정도가 커질수록
인지 검사에서의 수행은 떨어지고, 뇌 영상의 이상 소견은 늘어났다.


특히 계획, 주의 집중, 다른 인지 기능을 조절하는
‘실행 기능’ 영역에서 저하가 두드러졌다.


경도 이상 청력 손실이 있는 사람들은
정상 청력인 사람들보다 전체 뇌 용적이 작고, 실행 기능도 더 나빴다.


더 놀라운 건 그보다 살짝 아래 단계였다.
경도 미만, 그러니까 “살짝 나빠진” 정도의 청력 손실만 있는 사람들조차
백질 이상 소견이 더 많을 위험이 있었다.


두 번째 하위 그룹을 15년 넘게 따라가 보니,
경도 미만 청력 손실이 있는 사람들은
정상 청력을 가진 사람들보다 치매 진단을 받을 위험이 71% 더 높았다.


연구진은 여기에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높이는
APOE4 유전자 대립유전자의 영향을 겹쳐 보았다.
경도 미만 이상의 청력 손실과 치매 위험의 연결은
APOE4를 가진 사람에서 훨씬 더 강했다.


즉 APOE4를 갖고 있으면서
최소한 경도 미만 청력 손실이 있는 사람은,
APOE4는 없지만 경도 미만 청력 손실이 있는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더 높았다.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이 있다.


최소 경도 미만 청력 손실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보청기를 쓰는 이들은 쓰지 않는 이들보다 치매 위험이 낮았다.
특히 APOE4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서 이 보호 효과가 더 컸다.


더 나아가 나이, 성별, 교육 수준, APOE4 상태 같은
기존 위험 요인과 함께 청력 손실을 치매 예측 모델에 넣었을 때
모델의 예측 정확도도 좋아졌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밀 에티엔 박사는
“중년기 청력 손실을 뇌 구조 변화, 인지 저하, 미래 치매 위험과
같은 코호트 안에서 한꺼번에 연결한 가장 포괄적인 평가 중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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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력이 나빠지면 치매 위험이 오를까.


과학자들은 몇 가지 가설을 이야기한다.
먼저, 소리를 잘 못 들으면 대화가 힘들어지고
사람을 피하게 되면서 사회적 고립이 커질 수 있다.
이 고립이 인지 저하 위험을 올린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인지 부담”의 문제다.
귀가 나빠지면 뇌가 소리를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써야 하고,
그만큼 기억이나 실행 기능에 쓸 여력이 줄어든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어디까지나 관찰 연구다.
그래서 “청력 손실이 치매를 일으킨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에티엔은 청력 손실이 치매 위험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초기 신경퇴행성 변화의 반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


연구진은 청력 검사뿐 아니라,
참가자들이 스스로 느끼는 청력 상태도 물어봤다.
하지만 자가 보고는 검사 결과와 자주 어긋났다.
많은 사람들이 경도 또는 경미한 청력 손실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구진은 특히 50세 이후에는
청력 평가가 정기 건강검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에티엔은 “청력 손실은 단순한 노화 증상이 아니라
인지 저하에 취약해질 가능성을 보여 주는 초기 지표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매우 흔하고, 과소 진단되며, 수정 가능한 요인이다.


보청기에 대한 데이터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2022년에 발표된 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보청기 사용이 치매 위험 19% 감소와 연관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에티엔은 보청기가 청각 입력을 개선하고,
뇌의 인지 부담을 줄이며,
사회적 관계 유지를 도와 뇌 구조 변화의 진행을 늦추는 방식으로
부분적인 보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는 보청기를 얼마나 오래, 언제부터,
얼마나 꾸준히 썼는지까지는 따로 분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보청기를 끼면 치매를 예방한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도구일 수 있다”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정직하다.


결국 이 연구가 내게 남긴 메시지는 단순하다.


청력 손실은 “나이 들면 그럴 수도 있지”로 넘길 일이 아니라,
치매 위험을 미리 비춰 주는 경고등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경고등은 비교적 쉽게, 조기에,
보청기 같은 도구로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는 드문 신호라는 것.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도, 경미한 청력 저하조차 알아채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음번에 본가에 가면
나는 아버지에게 TV 볼륨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볼 생각이다.


“아빠, 이번에 읽은 연구에선
귀가 살짝 나빠진 사람도 15년 동안 치매 위험이 71%나 더 높았대.”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조금은 귀찮아하면서도 이비인후과 청력 검사를 예약해 주길,
그리고 언젠가 보청기 상담을 받게 된다면
그 작은 기기가 아버지의 뇌를 지키는 얇은 방패가 되어 주길 바란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TV 리모컨 대신
귀에 살짝 꽂힌 보청기를 한 번 더 만져 보는 모습을
나는 마음속으로 미리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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