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와서 봄에 봄을 봄.

- 마음 풍경 -

by 산들바람

봄이 열리고 있다.

겨울이 닫히지 않았는데, 문지방을 넘지 않고 가만히 열리고 있다.

끝과 시작의 경계가 없이 슬며시 시작되는 계절, 봄!

봄에 봄을 본다.

바라본다. 눈부시다.

눈을 크게 뜬다. 세심하게 보고 싶다.

지금의 이 봄이 처음 봄처럼 아름답다.

누구에게도 봄은 처녀와 같은 새로운 봄이다. 작년의 봄과 다르고, 내년의 봄과 다르다.

계절을 맞이하러 대문 밖에 나가서 기다려본 적이 없다. 봄 말고는..

봄은 그렇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봄.

이 봄이 봄이라고 보여준다.


푸르러지는 나무 끝에서 올라오는 연둣빛에서,

시멘트 흙에서 올라오는 자잘한 제비꽃에서,

꽃부터 피는 생강나무, 목련, 그리고 개나리에서,

책가방을 챙겨서 등장하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학교 울타리 안에서 봄은 사람이다


시선을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니 아름답다.

겨울을 건너와서 나의 관점이 조금은 달라졌다.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

그 어떤 사람도 얼마나 소중한 우주인가!

그 우주를 마음으로 느낀다.

열리는 봄날 같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만난다.

여기저기 모두 봄이다.


봄이지만, 나는 겨울을 건너왔다.

건너와서 바라보니, 저 멀리 사라지는 시간, 겨울이 참으로 서러웠다.

시간을 살아내는 힘이 부쳤다. 그래도 견뎌왔다.

이유를 모르는 것을 견디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이게 삶이다’고 되뇌었다.

별거 없었다.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는 마음이면 되는 것이었다.

주장할 것도, 그렇다고 못날 것도 없고,

사랑하지 못할 것도, 원망할 것도, 경계를 나눌 것도 없었다.

없음을 알고 나니, 더욱 있음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구별하는 경계가 옅어지고 나니, 이쪽에서 저쪽도 없었고 다만 건너다보였다.

선을 긋고 살아왔다.

시간에 선을 긋고, 사람에게 선을 긋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에도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어가거나, 넘어오지 않기를 추구했다.

선은 없었다.

내가 만들어놓고, 그어놓은 금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짝꿍이랑 가운데 금을 그어놓고, 서로 넘어오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모든 것은 연속적인 선상에서 흐를 뿐이었다.


시작이 없으면 끝이 없고,

끝이 없으니 시작이 없다.

겨울의 끝이 봄의 시작이라는 경계 나눔의 시선을 내려두고 보니 겨울 안에 이미 봄은 있었을 뿐이다.

저 너머 지나가는 겨울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이 봄이 내가 인식하는 봄이다.

꽃에서 나무에서 시작되는 봄이 번져서

내 몸 안으로 봄이 들어오고,

주변 사람에게도 봄이 번져가면서,

내 안에서 경계가 흐려지는 봄을 맞이한다.


시간은 다름 아닌 오직 지금 뿐이고,

생각은 다름 아닌 오직 구별 짓지 않음 뿐이고,

행위는 다름 아닌 오직 보편적인 사랑으로 표출할 뿐이고,

생애는 다름 아닌 오직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뿐이다.


나누고, 구별하고, 우선시하고, 무시하고.. 이 모든 것이 자잘한 돌멩이였다.

햇살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모래가 되어서 더 잘게 부서지고 파도에 부딪쳐도 소리 내지 않듯,

내 안의 오늘도 특별할 것도 없으며,

특별한 날을 살려고 바둥거렸던 몸짓들이 안쓰럽다.

의미를 찾지 않는 것에 의미 있음을 알아가고,

경계를 구별하지 않는 것에 경계를 건너갈 수 있고,


봄이 눈부시게 찬란한 것은

온몸으로 떨리는 겨울을 지나왔기 때문인데,

그 겨울 안에는 이미 봄이 있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건너가고, 옅어지고,

그러면서

모든 것은 다가오고, 건너오고, 짙어진다.


건너와서 봄에 봄을 본다.

지나온 겨울이 아주 조금은 그립다.

다시 못 올 그 시간만의 겨울이라서 그렇다.

이유를 모를 수면과 불안장애는 이유 없음에도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17년을 함께 했던 강아지를 하늘로 보내놓고 곁에 없으니, 늘 내 안에서 지금도 펄펄 뛰놀고 있었다.

없음이 있음이 되었고,

있음도 없음이 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