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풍경 -
1월 1월이 두 달이나 지났다. 이미 2026년이 한참이나 지난 오늘, 나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의 학생과 교사는 오늘 그래서 여러 생각이나 감정들로 더 복잡할 것이다.
'입학과 개학'이라는 특별한 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연속성 앞에서 굳이 뚝 잘라서 '여기서부터 시작이고, 여기까지 끝이야'라고 구획을 나눠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생과 죽음 가운데서 시간을 가르는 구분을 말한다.
삶은 시간을 끊임없이 나눈다.
학교라는 공간에는 연도의 시간과 다른 시간이 흐른다.
2월이 한참 지나서 봄이 올락 말락 하는 3월 첫날이 새로운 학년도의 시작이다.
일기 예보에는 오늘 눈이 올 거라고 했는데, 창 밖에는 비가 내린다. 봄비이다.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노크를 하면서 잠을 자는 새싹을 깨울 것이다. 오늘은 학교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날인 듯하다.
우린 내일부터 이제 새로운 위치와 역할을 부여받아 그 일을 착착 행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부터 중학교 신입생, 이제부터 고등학생이야.. 오늘부터 학 학년씩 올라간 2학년, 3학년이야...
'잘 끝냈고, 다시 시작하라'라고 학교에는 타임벨의 종소리가 하루에 몇 번이라도 울릴 것이다.
시작은 새로 다잡는 것이고, 발을 떼는 것이고, 출발을 말한다.
시작은 이미 그 가운데 끝이 있으므로, 시작이 끝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시작의 시간은 새로운 만남을 가져온다. 모든 만남이 새롭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 새로운 나.. 그 앞에서 새로운 시간의 경계가 열린다.
경계를 넘어서면 더 멀리 보고, 더 나아가며, 더 높아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같이 열린다.
학교에 있는 우리는 "내일부터 잘했으면 좋겠어. 잘되었으면 좋겠어. 아무 일 없이 잘 지났으면 좋겠어.
모든 날이 좋았으면 좋겠어.."라고 기대한다.
아직은 개학하지 않은 나의 2월, 시간이 날 때마다 몸을 움직이면서 산을 올랐다.
서울에는 산이 많았다. 안 가본 산이 많았다. 올라가 보지 않은 산들을 하나씩 정해서 걸어보기로 했다.
용마산, 아차산, 대모산, 구룡산, 도봉산, 청계산...
걷는 것과 오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산을 올라갈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도봉산에서는 한 발을 올라서 디딜 한 뼘 공간도 없는 절벽 앞을 마주해야 했다. 밧줄을 잡고 온몸의 체중을 두 팔의 힘으로 들어 올려서 올라서야 하는 바위 앞에서 포기하려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청계산에서는 매봉 정상 끝까지 계단 오르막이었다. '어디까지 가야 끝인가?' 싶은 마음이 끝없이 차올랐다.
그때마다 저 멀리 정상까지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기 일쑤였고, 끝이 어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로 코 앞에 다가온 오르막들을 올려다보았다. 조금씩 오르면 조금씩 시야가 트인다. 조금씩 오르면서 남아있는 거리가 줄어들어가는 이정표 팻말을 본다. 그만큼 걸어왔으니, 그만큼 끝이 다가옴을 알았다.
끝이 있다는 것은 그래서 견디게 해주는 힘이기도 했다.
끝이 결코 나쁘지만 않다는 것을 몸으로 새긴 등산이다. 죽음은 끝이다. 그런데 한없이 고통스러운 인간의 필연적 노화에서 오히려 죽음은 자유로움을 가져오는 끝일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나의 생각은 나의 몸과 달랐다.
정상이 얼마 안 남았네..라고 생각하면서 올랐는데, 한참이나 길게 올라야 했다.
때로는 한참이나 끝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정상이었다.
끝이 지지부진하게 길게 이어질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끝이 올 수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끝이 있었다. 그래서 한 걸음을 올라서면서 걸을 수 있었다.
학교는 내일부터 시작이지만, 이미 끝이 시작되었다.
계속 흐르는 시간인데, 굳이 새로운 시간을 정해놓은 경계는 열림, 그리고 닫힘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에게 새로운 시작의 열림은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이 닫혔기에 툭 털어버리라고 표시해 주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잘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만큼만 하면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더 잘하라고, 더 잘해야 한다고 몰고 가면 우리는 가쁜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평지를 만날 수 없다. 산에서 반가운 것은 갑자기 내 앞에 펼쳐지는 평지의 능선길이다. 숨을 고르면서 바람을 쐬면서 땀을 식힌다. 그런데 만약 청계산처럼 계속 펼쳐지는 오르막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스스로 의지를 갖고, 나에게 걸음을 멈추라고 해야 한다. 계속 달려, 계속 올라, 계속 열심히 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나는 나를 쉬게 해야 한다.
학교는 이미 각자의 산들을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각자의 능력이나 심폐 기능과 근육량이 달라서 각자의 오름으로 학교라는 산을 오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 존재의 의미를 갖는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시간들을 채우며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러니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높은 산을, 더 높은 정상만을 계속 올라가야 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려고 하는 마음을 그만두고, '지금 이대로' 괜찮다..
교사가 되어 나는 지금까지 잘못 가르쳤다.
더 잘하라고, 더 열심히 하라고, 더 노력하라고... 가르쳤다. 더 뭘 잘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더 잘해야 하는지 의미도 없이 몰아세우려는 가르침이 나의 역할이라고 착각했다.
이미 각자만큼 잘하고 있으니, 그만큼 올라가고 있으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되었다.
그렇다고 나를 탓하지는 말자. 이만큼 살아서 알게 되었으니..
아직 더 끊임없이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날들을 지내왔기에 지금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아닐까?
나를 원망하지 말자.
남을 원망하지도 말자.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자, 이제 내일부터 시작이다.
우리 모두의 시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