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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 Nov 19. 2022

승진 시즌

대기업 프로 용병기



"아직 확정은 니니 참고만 하세요. "


팀원들과 함께한 개인적인 술자리에서 우연히 내년도 변경 예정인 조직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전사의 조직 구조가 그려져 있고, 팀이 써있고, 그리고 팀장까지 적혀진 문서였습니다. 사석에서 공유된  자료는 최종 버전이 아니라 혹시 바뀔수도 있는 내년도 조직도였지만  자료를 슬쩍  순간, 저는 즐거웠던 술자리에서 문득 기분이 서서히 다운됨을 느꼈습니다.  



참고로 저희 회사는 직책이 없는 곳입니다.


임원이 있고, 일부 팀장이 있지만 모두 실무자로 일하는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하기 때문에 별도의 승진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아직 입사 1년이 안되어 정확한 내용은 좀 더 지나 봐야 알 수 있겠네요.) 신입사원부터 부장급까지 모두 동일한 호칭으로 부르며 스피드한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듣고 입사 했고, 지금까지 저 스스로는 그 취지를 잘 살려 편한 마음으로 일해왔고 구성원 모두 그 취지에 맞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본 그 조직도에서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그 이름 석자가 제 마음속에 다시 한번 새겨졌습니다. 주로 회의를 통해 친분이 두터워지는 제 스타일대로, 그 분은 특정 그룹 회의를 반복하며 친해졌던 동료 분이었습니다. 함께 편히 대화하며 일했고 동일 직급으로서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이었는데 '팀장'까지만 적혀지는 그 문서에서 그 분의 성함을 보자 마음이 쿵 내려앉으며 가라앉음을 느꼈습니다. 그 분은 이제 옆 부서의 팀장, 저는 내년에도 여전히 팀원 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매일 새로운 배움이 있었고 새로운 동료들을 알아가며 즐거웠던 저의 회사생활이 그 분과의 비교를 통해 순식간에 무의미함의 범주로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물론 여러번의 회의와 사무실 어딘가에서 만나 잠깐씩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동료분은 여러모로 매우 명확한 일처리와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돋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충분히 팀장 역할을 훌륭히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행복은 상대적 이었습니다.


'그 분은 연차가 얼마나 되었을까'

'나이는 몇 살 일까'

'나는 이 연차가 된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승진이 없는 수평적 조직의 회사에서 마저 직책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매우 크게 느껴졌습니다. 연봉과 처우 등과는 전혀 상관없는 박탈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마음이 제 위치로 잘 돌아오지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는 승진과 직책을 그렇게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MZ세대의 특징과 유사하게 프로 용병이된 저는 팀장 이라는 직책보다는 프리하게 일하고 워라벨 챙기는 팀원이고 싶은 마음이 큰 보통의 일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동료의 이름 세글자를 팀장 들이 적혀진 문서에서 발견하는 순간, 순간적으로 경영학 시간에 배웠던 매슬로우의 요구 5단계 중 '인정욕구'의 높은 단계가 떠올려지며 또다시 감정에 동요되어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왜 대기업 대감님댁 진골 위치에서 상노비 행세를 하며 내집처럼 편히 일하다 갑작스럽게 봇짐을 매고 평생 용병의 길로 나서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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