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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 Nov 22. 2022

이직을 결심한 이유

대기업 프로 용병기



핸드폰을 들어 카톡을 열었습니다. 공채로 입사해 오랜 기간 몸을 담았던 첫 대기업에서 여러가지 연을 이었던 분들의 이름 이 떠올랐지만 그 중 후배 였던 한 명의 이름을 쳐 봅니다. 그리고 검색된 프로필 사진을 넘겨보며 여러가지 생각에 잠깁니다.


'팀장이 되었었는데 아직 잘 지내고 있구나... '


프로필 사진 중 하나는 팀원들이 만들어준 생일 파티 사진. 여유있고 세련된 옷차림에 함박 웃음 가득한 그 후배의 사진을 보며 저는 그리움 보다는 씁쓸함에 더 가까운 마음이 가득해 졌습니다.






대기업 공채로 입사하며 오래 머물던  회사에서 저는 재미있는 일들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었고 추진력있게 일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곳에서 했던 마지막 프로젝트는 특히 새롭고 도전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저는 주저없이 자발적으로 프로젝트에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매우 도전적이었던  프로젝트는 성과 도출의 기간이 매우 짧았고, 내용 면에서도 다양한 부서의 역할과 도움이 필요한 복잡한 내용 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성과도 크지만 리스크도 컸던 겁니다. 그런 것들을 알면서도  프로젝트의 성과가 회사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많은 배움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며 힘든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에 함께  모든 구성원이  같은 마음은 아니었고 대부분 보통의 직장인의 모습으로 힘겨워 하고 많은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행히 최선을 다해 프로젝트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시는 분이 조금더 계셔서 혼자가 아니었고 그런 분들과 협업했던 기억만으로도  즐거웠던 경험이라고  기억속에 남아 있습니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대부분의 카운터 부서들은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를 이해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업무 요청이 일어날 때마다 불만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하고자 해서 저는 협조에 소극적이던 카운터 파트 담당자를과도 최선을 다해 커뮤니케이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통화로 크게 다툰 후 전화를 끊고 결국 사무실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제 마음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그간 많은 배려로 커뮤니케이션 해왔지만 결국 신뢰가 없었구나, 오해하고 있었구나 아쉽고 서러워 부끄럽지만 사무실 한가운데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저녁 감사하게도 동료들의 위로를 받으며 퇴근 후 조용히 회사 근처 허름한 2층 중국집에 술 한잔 하러 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또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윗선의 방향성이 흔들리고 바뀌어 처음 하려고 했던 목표가 바뀌었을때, 저도 팀원들도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었지만 애써 서로를 응원하며 마음을 다잡고 협력 회사들을 설득하며 다시 업무를 기획하고 스케줄을 다시 짰던 것도 기억이 남는 위기의 경험 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오픈 전 마지막 2주간은 주말에도 서로 전화로 진행 상황을 파악하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고, 평일에는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며 불안한 마음 반 뿌듯한 마음 반으로 퇴근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마음 놓지 못하고 아슬아슬함으로 필요한 조직, 필요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에 최선을 다하며 일했고 결국은 그렇게 무사히 예정된 목표를 달성 했습니다.


저의 사이클과 동일하게, 카톡 프로필을 검색했던 그 후배도 그 즈음 유사 프로젝트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자발성은 없었고 프로젝트를 잘 해보려는 의지도 없었으며, 심지어 공공연하게 그런 마음의 상태를 조직 내외부에 편히 이야기 했습니다. 당사자가 아니어서 구체적인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제가 참여한 프로젝트에 비해서는 예산과 인원의 규모도 적었고 상대적으로 테스트 비지니스 성격이 강한 조금은 수월한 프로젝트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부정적으로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보고하기를 몇차례. 결국 저희 프로젝트가 어려운 목표를 가까스로 달성했을 즈음, 동일한 시점에 그 후배는 긴 기간동안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프로젝트 종료 및 해산 보고를 했습니다. 후배는 그 뒤 인사팀과 면담 후 원하는 부서로 발령을 받았고, 프로젝트 때보다 어려움이 없다는 안부를 전하며 잘 지내는 듯 했으며, 주변을 통해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핏에 맞는 곳에서 잘 지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승진 발표 공지.


제가 속한 디지털 부서에서는 근래에 진급자가 거의 없었고, 저보다 연차가 많은 분들이 몇 년째 승진이 누락되어 계셨기 때문에 저는 승진 대상이었지만 큰 기대는 없는 상태로 승진자 리스트를 열어 보고 있었습니다. 스크롤을 내려 죽 훑어 보았지만 대충 본 리스트에서는 제 이름이 없었습니다.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색 기능을 활용해서 문서 중 제 이름을 찾아봤습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어차피 큰 기대도 없었으니까...'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크게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더 객관적인 눈으로 문서를 처음으로 올려 혹시 아는 사람들이 있나 차근 차근 내용을 훑어 봤습니다. 익숙하 이름들이 보이고 몇 분께는 사내 메신저를 통해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보내며 계속 확인을 하며 문서를 내렸습니다. 오래도록 승진을 못하신 선배의 반가운 이름도 보였고, 열심히 해서 에이스였던 후배님의 이름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마다 진심을 담아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서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한 이름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바로 옆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못하고 아무런 성과없이 종료시켰던 그 후배의 이름 이었습니다.



후배가 먼저 진급을 하는 것은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선배지만 제가 보기에도 열심히 하는 후배들을 보면 인정하게 되고 앞서가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구나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반대로 저보다 뛰어나지만 진급을 못했던 분들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실력과 진급은 또 다른 이야기 같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실력에 앞서 높은 직책으로 올라간 선배들을 보아도 영원히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필귀정이라고 내가 분노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결국 정의롭게 일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진급에 대해 별다른 욕심없는 평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는 도저히 그 문서를 더 내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동일한 기간의 성과는 명확히 한 쪽은 프로젝트 목표 달성이었고 다른 한 쪽은 프로젝트 해체와 종료였습니다. 프로젝트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후배의 태도와 스토리, 업무 평판 들도 모두 알고 있기에, 거기다가 동기간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성과 또한 극명히 비교할 수 있기에 진심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것이라 위로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했지만, 그 문서에서 발견한 이름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허무함과 박탈감이 밀려 왔습니다. 물론 이렇게는 더 이상 일 못하겠다, 당장 사표를 내고 나오겠다 하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어떤 어려움에도 강력했던 일의 의욕,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은 분명 한 순간에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회사와 나, 성과와 나를 동일시 했던 공채 출신 성골 회사원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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