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만 다닌 이야기 #3

딸에게 남기는 부자의 태도(7)

by 사투리감별사

(전편에 이어)


그렇게 다시 무주택자가 됐다. 무주택의 삶은 자유로웠다. 그 당시는 전세금에 맞춰 집을 찾아보고 전세금이 안 맞으면 반전세를 구하면 그만이었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서울과 주변 지역에 아파트 공급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은 속절없이 떨어졌고 전월세 가격도 동반 하락했다. 집을 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물량도 많았고 가격도 안정된 시기였다.


oo구에 반전세 아파트를 구했다. 이 아파트는 4세대 아파트라고 불린 신축이었다. 어린이 놀이터는 기구도 다양했고 아이들 안전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실내에는 테마파크처럼 전기 기차가 다녔다. 이 아파트는 특히 지하 주차장의 조명을 밝게 해 놨다. 밤에도 대낮처럼 환했다. 오징어잡이 어선에 매다는 전등을 달아놓은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관리비가 비쌌다. 월세에 관리비까지 많이 나오니 부담스러웠다. 또 근처에 버스터미널이 있어서 아파트 밖은 공기가 안 좋았다. 항상 새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단지 바로 뒤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고 신규 분양을 했다. 그때 국평 분양가가 00원이었다. 무슨 30평대가 그렇게 비싸냐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나 미분양이 났다. 하지만 지금 가격은 말도 못 한다.


그때 마침 직장 어린이집에서 추가 입학 허가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어린이집까지는 통학하기가 먼 거리라서 1년 만에 이사를 결심했다.


oo구에 있는 아파트는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됐다. 전세금도 저렴해서 남는 금액은 펀드에 넣었다. 다만 연식이 좀 됐고 시설도 그만큼 낙후됐었다. 그때 갓 세 살이었던 너는 이사 온 집이 별로였던 것 같다. "우리 집으로 가자아~." 이사 온 첫날, 네가 아빠에게 한 말이었다.


직장과 어린이집이 모두 가까워서 좋았던 그 아파트는 다만 평범하지 않은 이웃들이 많았다.


하루는 1층에 주차를 했는데 앞 범퍼 모서리에 빨간 페인트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 분명 내릴 때까지 없었는데 이상했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CCTV를 확인했다. 근처에 있던 빨간 차가 가해자였다. 빨간 차는 주차를 하다가 우리 차를 쿵하고 받더니 바로 빼서 다른 곳에 주차했다. 잠시 후 차 주인은 우리 차 앞 범퍼를 슬쩍 보더니 아무 일 없는 듯이 현관으로 들어왔다.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도 함께 있었다. 그 어린이는 그날 무엇을 배웠을까?


또 하루는 주민들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버려서는 안 될 물건들을 넣어서 버린 모양이다. 관리사무소는 종량제 봉투를 칼로 뜯어서 아파트 광장에 전시를 했다. 주민 계도 차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발상이 무척 지저분했다.


집에는 바퀴벌레가 이상하게 많았다. 약을 뿌려도 보고 붙여도 봐도 별 효과가 없었다. 방역업체를 불렀다. 방역업체는 이미 같은 동에서 신고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확인해 봤는데 o층이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주민들 신고로 o층 문이 열렸다. 어떤 주민이 쓰레기 더미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집이 바퀴벌레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래층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층간소음을 신고했다. 하루는 새벽에 세 식구 모두 잠든 시간에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층간소음 신고가 왔다고 했다. '다들 자고 있었는데 무슨 말이냐. 해도 해도 너무하네.' 항의하러 아래층에 갔다. 그 할아버지는 절대 문을 열지 않았다. 집에 없는 척을 했다.


어떤 이웃들과 함께 사느냐가 주거지 선택의 중요한 기준임을 뼈저리게 느낀 2년이었다. 이제는 좋은 이웃들만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십여 년 후, 이보다 더한 이웃들을 만나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다.


2년 후에 oo구로 이사를 했다. 직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였다. 로비는 깨끗했고 젊은 보안요원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꼭대기 층에서는 맑은 날에 바다도 보인다고 했다. 층간 소음도 없었다. 일반 아파트처럼 벽식 구조가 아니라 기둥식 구조로 지어서 소음이 아래층으로 바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월세는 비쌌고 관리비도 많이 나왔지만 그래도 만족도는 아주 높았다.


그런데 정권이 갑자기 교체되었다. 집값이 다시 스멀스멀 오르기 시작했다. 새 정부는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며 준비한 규제 정책들을 하나둘씩 꺼냈다. 정부의 정책에 많은 국민들이 호응했고 지지했다. 우리 가족도 집값을 잡아준다는 정부를 믿었다. 이 집에 계속 살고 싶었고, 집주인도 우리가 오래 살기를 원했다. 그 해 지방선거에서도 여당은 압승을 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매매 가격은 급격히 상승했다. 무엇보다 전세 매물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전세가 부족하니 월세는 치솟았다. 그럴수록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더더욱 노력했다. 세제, 금융, 공급 분야에서 전 방위로 강력한 규제책을 쏟아냈다. 우리는 집값이 꼭 잡히기를 바랐다. 전셋값이 오르지 않기를 바랐다. 월세는 이미 충분히 비쌌다.


그즈음이었다. 저녁 뉴스를 보는데 당시 여당 출신 서울 시장이 싱가포르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여의도와 용산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마스터플랜을 발표한 것이다. 아악!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이 정부는 집 값을 잡을 생각이 없구나. 그게 아니면 집 값을 잡는 방법을 모르거나. 바로 다음 날 우리는 다시 집을 구하러 나서야만 했다.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