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좀팽이

딸아! 이런 남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3)

by 사투리감별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수 1,500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가 끝나고 눈물 콧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화장실로 직행했는데 네 엄마가 눈치를 챘나 모르겠다. 소감을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A 씨가 떠올랐다.


A 씨는 예전부터 본인 고향에 단종이 머물던 처소가 있고, 누군가가 단종을 모셨다고 했었다. 그 인물이 영월 엄 씨라고 했는데 영화를 보니 배우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 분은 항상 자신의 두꺼운 허벅지를 자랑스러워했다. 아랫사람들에게 꼭 한 번씩 만져보라고 했다. "단단하십니다. 대단하세요"라고 립서비스를 날려도 당연하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이 분은 주사가 심했다. 저녁 회식 때 같은 부서 직원이 마음에 안 든다며 소주잔을 던진 얘기는 전설로 내려왔다. 그래도 맞벌이하는 아내와 함께 oo동에 아파트와 상가가 있다고 했다. 자식들도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 분에 대한 가장 또렷한 기억은 아빠 결혼식에 축의금을 두 번 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축의금 5만 원이 기본이었다. 학교와 직장의 동료 선후배들은 그냥 5만 원씩 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축의금 리스트를 훑어보는데 이 분만 이름이 두 번 적혀 있었다. 앞장에 ooo 3만 원, 한참 뒷장에 같은 이름 ooo 2만 원. 3만 원만 했다가 무슨 이유인지 2만 원을 더 낸 것이다.


기분이 묘했다. 이거 뭐 그냥 하지 말던가. 아마 3만 원만 했다가 다른 사람들이 5만 원씩 했다는 얘기를 듣고 더 낸 게 아닐까 싶다. 내심 3만 원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빠도 마음으로는 딱 그만큼만 받았다.


결혼식을 올린 지는 오래됐지만 이 분은 잊히지 않는다. 쩨쩨한 부자. 즉 '부유한 좀팽이'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로 말이다.


B 씨는 집안이 좋다. 유학파 가족이다. 아버지 세대부터 본인을 거쳐 자식까지 유학을 했다. 좋은 직업을 가졌고 정년을 채웠다. 시내 몇 곳에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남들에게 돈을 참 안 쓴다. 밥을 사지도 않고 커피도 사지 않는다. 간혹 국밥을 사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건 본인이 국밥을 먹고 싶을 때 법인카드로 혼자 먹으면 영수증에 티가 나니까 누군가를 데려가는 것이다. 국밥 이상을 사는 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후배들이 밥을 사거나 커피를 사거나 술을 산다. 그래도 잘 먹었다고는 하는데 그걸로 끝이다. 누군가에게 얻어먹으면 본인도 비슷한 정도로는 사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함께 골프장에 갔을 때 일이다. 그분이 아빠 차를 얻어 탔다. 멀리 있는 골프장이라서 왕복 네 시간 거리였다. 3명이 라운드를 했다. 다른 한 명도 내 또래여서 그분이 가장 연장자였다. 라운드가 끝나고 식사 자리에 갔다. 운전하느라 고생했다며 막국수를 사겠다고 했다. 잘 먹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한 명에게는 따로 계산하라고 했다. "너는 운전을 안 했으니까."


몇십만 원 넘는 골프를 치고 나서도 만 원짜리 국수는 함부로 사줄 수 없나 보다. 아빠는 이런 부류를 '부유한 좀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C 씨는 수재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교의 최상급 학과를 졸업했다. 누구나 알법한 명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자식 또한 부모를 닮아 명문대를 나왔다. 직장에서는 승승장구했다. 핵심 업무를 맡아 유명세도 치렀다. 이 사람이 기획한 상품은 국민 대부분이 알 것이다.


이 사람은 더 했다. 절대로 남에게 지갑을 열지 않았다. 천 원 한 장 쓰는 걸 본 사람이 없다. 게다가 돈을 안 쓰는 걸 넘어서 남의 돈을 받아 챙겼다. 협력업체로부터 수년간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이 건은 유독 느슨하게 처리됐다. 멀쩡하게 출근도 하고 얼마 후에는 승진도 했다. 주위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이전에 다른 직원은 같은 사유로 해고됐는데 왜 이번에는 다른지, 또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왜 저리도 궁색하게 사는지 말이다. 도대체 리베이트로 받은 돈은 어디에 썼을까?


그 후에도 이 사람은 협력업체들과 미팅을 많이 잡는다. 뒷돈 받고 징계받은 소문이 났을 텐데도 부끄럽지 않은가 보다. 지금도 어디선가 업체로부터 밥 한 끼, 술 한잔을 얻어먹고 있다고 해도 새삼스럽지 않다.


오늘은 '부유한 좀팽이'의 사례를 들어봤다.


아빠는 네가 혹시 이런 남자와 마주치더라도 이들처럼 돈 앞에서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먼저 마음의 그릇을 키우고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봐. 네가 베푼 것보다 더 많은 걸 받게 될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