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4)
아내가 또 아프다.
퇴근했더니 아내가 인상을 쓰고 앉아 있다.
오늘은 허리를 삐끗했단다.
강아지 오줌판을 바꿔주다가 그런 모양이다.
이따가 허리에 파스를 붙여 달라고 한다.
오늘도 집안 공기가 어둡다.
아내는 몸이 약하다.
척추측만증이 있어서 목, 어깨, 등이 세트로 아프다.
소화불량이 있어서 밤새 손을 주무르느라 잠을 설친다.
장유착증이 있어서 일 년에 사흘은 꼭 입원을 한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외출을 꺼린다.
수족냉증이 있어서 혈액 순환이 안된다.
무릎이 아파서 오래 못 걷는다.
갱년기도 왔다.
요즘 더웠다가 추웠다가,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게 영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폐경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여성 호르몬의 변화라고 했다.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런데 집안 공기가 더 어두워졌다.
아내는 몸을 돌보지 않는다.
밥을 잘 안 먹는다. 하루 한 끼도 먹는 둥 마는 둥이다.
입맛이 없단다. 가만히 안 움직이니까 입맛이 없지.
"밥 먹자"하고 아침을 깨우는 엄마의 모습을
이 집에서는 보기 힘들다.
운동을 안 한다. 스트레칭도 안 한다.
약을 먹거나 약을 붙이거나 아니면 병원을 간다.
아프지 않으려고 미리 예방한다는 개념이 없다.
약을 잔뜩 사놓는다. 그런데 먹지는 않는다.
서랍에는 영양제만 한가득 쌓여 있다.
유통기한 지날까 봐 내가 꺼내 먹는다.
나만 더 건강해진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다 잔소리란다.
밥 먹으란 얘기는 부모의 말도 안 듣는다.
그러면서 딸에게는 밥 좀 많이 먹으라고 잔소리한다.
"딸은 사춘기. 아내는 갱년기."
그때 술자리에서 선배가 웃으며 내뱉던 말이었는데 나도 피할 수 없게 생겼다.
나도 여기저기 아픈 데 아프다는 말을 꺼낼 틈이 없다.
이 상황은 또 언제쯤 끝나려나.
심리 상담을 받았다.
갱년기 여성은 특별히 좀 더 부드럽게 대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아내가 건강해지나요?
아내의 마음을 달래주면 스스로 건강도 챙길 거라고 하신다.
아닌 것 같은데.
내 아내를 잘 몰라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25년 살아봤는데...
아내가 내일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한다.
호수 근처에 맛집을 알아냈다고.
두 모녀 모두 좋아하는 메뉴란다.
아내가 식욕이 살아 있는 거 보니
오늘 밤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구나.
오늘은 참 운수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