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남기는 부자의 태도(5)
아빠는 내 방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
어릴 적 개구리 울던 마을에 살 때는 세 식구가 한 방을 썼다. 아빠는 네 작은 아빠, 그리고 집안일을 도와주시던 가정부 할머니랑 함께 생활을 했다. 단층집이었는데 겨울에는 연탄을 땠다. 밤에 가정부 할머니와 네 할머니가 번갈아가며 연탄을 가셨다. 이불을 두껍게 깔아도 아랫목은 따뜻했지만 윗목은 차가웠다. 가정부 할머니는 아빠한테 가장 따뜻한 자리를 양보하셨다. 본인은 괜찮다며 추운 방문 앞에서 주무셨다.
아빠는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는 타입이었다. 그때는 아무도 내색을 안 했지만 불빛 때문에 잠자리에 방해가 됐을 것 같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한 방에 12명이 생활했다. 2인용 침대 6대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12명이 수시로 들어오고 나가느라 늘 분주했다. 방에는 몸 냄새, 빨래 냄새가 진동했다. 그나마 1학년 때는 화장실이라도 쓸만했다. 사감 선생님이 규율을 엄하게 잡으셨기 때문이다. 2학년이 되자 아무도 청소 점검을 안 했다. 어느 선생님이 가혹한 체벌을 가하다가 징계를 받으신 모양이다.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는 항상 더럽고 시끄러운 공간이었다.
상경을 했다. 대학교가 아니고 재수학원을 다녔다. 노량진 하숙집에서 2인 1실을 썼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덩치 큰 친구와 한 방을 썼다. 화장실도 깨끗했고 식당 갈 때마다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됐다. 행복했다. 그런데 방이 너무 작았다. 책상 두 개로 방이 꽉 찼다. 책상 밑에 발을 넣어야만 요를 펼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하숙집은 항상 깨끗하고 조용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기숙사는 2인 1실이었다.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침대도 책상도 새것이었다. 식당은 지하에 있어서 슬리퍼만 신고 밥을 먹으러 다녔다. 룸메이트 형은 CPA를 준비하는 경영학과 학생이었다. 지낼 만했다. 그런데 대학 기숙사도 룰이 있었다. 밤 12시가 통금 시간이었고 몇 회 이상 위반하면 다음 학기에는 떠나야 했다. 여자 친구를 처음 사귀었다. 신나서 늦게까지 데이트하다가 통금 시간을 여러 번 어겼다. 결국 한 학기만에 쫓겨났다.
마침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사촌 형이 혼자 살고 있었다. 들어가 살기로 했다. 처음에는 기꺼이 동거를 허락했던 사촌 형이지만 같이 살다 보니 서로 부딪히는 일들이 종종 생겼다. 정확히는 아빠가 늘 혼나기 일쑤였다. 한 번은 사촌 형이 집을 비웠을 때 친구들을 불러서 밤새 놀았는데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사촌 형이 나가라로 했다. 그래서 또 한 학기만에 쫓겨났다.
군대 막사도 2인 1실이었다. 대학 기숙사와 여러모로 비슷했다. 방에는 침대와 에어컨이 있고, 복도에는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었다. 그런데 동양인과 서양인은 취향이 좀 달랐다. 룸메이트는 에어컨을 좋아했고, 나는 히터를 좋아했다. 룸메이트는 음악을 큰 소리로 즐겼고, 나는 소리가 방 밖으로 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는 추석에 우리 고향에 가서 성묘도 하고 사우나도 같이 한 사이였다. 그래도 태생이 많이 달랐다.
복학하는 아빠에게 네 할아버지가 원룸을 마련해 주셨다. 학교 근처에 있는 반지하 원룸이었다. 떠돌이 생활 그만하고 이제는 공부하라는 의미였다.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설레었다. 나만의 물건으로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철제로 된 침대도 사고, 책상과 협탁도 샀다. 중고 TV 랑 중고 냉장고는 벼룩시장을 통해 구매했다. 벼룩시장은 신문처럼 된 정보지였는데 물건도 사고팔고, 과외도 구할 수 있었다. 요즘 당근마켓의 종이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가 반지하라고 했잖아. 여름이 되니 곰팡이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입주할 땐 벽지를 새로 해서 몰랐는데 새까만 곰팡이가 구석구석 숨어 있었다. 이불에도 옷에도 꿉꿉한 냄새가 배었다.
전화기 신호도 잘 안 잡혔다. 아빠는 PCS 폰을 썼다. 신호 강도를 나타내는 작대기를 하나라도 더 늘려보려고 안테나도 새로 바꿔봤다. 그래봤자 작대기 신호 5개가 전부 뜨는 건 드문 일이었다. 누군가와 전화라도 하려면 침대 위에 발을 딛고 서있어야 했다. 팔을 최대한 뻗고 큰소리로 말하거나 아니면 창문에 폰을 올려놓고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해야 했다. 팔이 아프거나 고개가 아팠다.
무엇보다 동네 고양이가 자꾸 아빠를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열린 창문으로 지나가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놀라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자괴감이 들더라. 나는 고양이보다도 낮은 곳에 사네. 영화 기생충은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입사를 했다. 전세금에 월세를 조금 더해 이사를 했다. 여전히 원룸이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 반지하가 아니었다. 무려 5층 건물에 4층이었다. 그런데 원룸이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대학교는 보통 산 아래에 지어서 학교 밖도 평지가 별로 없다. 버스정류장에서 작은 언덕을 하나 넘고 또 큰 언덕을 끝까지 올라가야 했다. 언덕에 오르면 다시 4층까지 계단을 올랐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네 엄마와 결혼 날짜를 잡았다.(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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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좁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하는건지 알려주려고 했는데 결혼 전 이야기가 길어졌다. 다음 편에는 결혼생활 25년간 10번 이사하면서 터득한 '작은 공간 넓게 쓰는 법'에 대해 들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