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2019), 고작 사랑이라는 틀에 머물러 버린 작품성
간혹 좋은 소재와 분명한 메시지를 품고 있으면서도, 감독의 자의식 과잉이나 자신감 부족 때문에 스스로의 가능성을 좁혀 버리는 영화들이 있다. <윤희에게>는 그런 아쉬움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눈 덮인 오타루의 풍경과 그 위에 얹히는 음악, 그리고 김희애와 나카무라 유코가 만들어내는 연기의 무게감은 영화 내내 관객을 설득한다.
이 조합은 이야기의 구체적인 내용을 떠나, 이 작품이 ‘겨울’이라는 계절과 오래 연결될 수 있는 감각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몇 해가 지나도 겨울이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를 법한 이미지와 정서가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아쉬운 지점도 있다. 어린 김소혜 배우의 연기는 이야기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고, <러브레터>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장소와 분위기는 기시감을 남긴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이 영화가 가진 여러 장점에 가려 비교적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이야기는 멈춰 있는 두 인물, 윤희와 쥰으로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를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이 자연스럽게 짐작하게 만드는 방식은 꽤 매끄럽다.
과거에 멈춰 있던 쥰이 수십 년 만에 윤희에게 편지를 보내며 다시 움직이고, 윤희 역시 오타루로 향하며 자신의 시간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사정과 상처로 멈춰 세워 두었던 삶이,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마주 서고 흐르기 시작한다는 설정은 감성적이면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 과정의 연출 역시 크게 무리하지 않고, 감정의 흐름을 차분히 따라간다.
이 지점까지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얼마든지 더 넓은 이야기를 품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 가능성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틀 안으로 스스로 한정해 버린다.
더 나아가, 최근 영화계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룰 때 자주 호출되는 퀴어 서사의 형식 안으로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오히려 이야기의 확장 가능성을 스스로 좁힌다.
꽁꽁 언 눈 덮인 겨울처럼 회피하고 멈춰 있던 개인의 시간 속에서, 봄이 눈을 녹이듯 다시 한 발 내딛는다는 주제는 사랑이라는 관계를 넘어 더 다양한 삶의 국면으로 뻗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여지를 깊이 탐색하기보다, 비교적 평이한 감정의 경로를 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사랑과 퀴어라는 요소를 다루면서도 결코 가볍거나 자극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직설을 피하고, 마지막 나레이션으로 조용히 감정을 정리하는 방식에서는 분명하고도 수준 높은 연출 감각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퀴어는 필수 요소라기보다, 하나의 선택에 가깝다.
그렇기에 더욱 큰 아쉬움이 남는다. 임대형 감독은 이 정도의 미장센과 배우, 그리고 정서적 밀도를 다룰 수 있는 연출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왜 모든 이야기를 사랑이라는 하나의 해석 틀 안에만 묶어 두었는지 자연스레 의문이 남는다.
<윤희에게>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잘 만든 영화다.
계절의 감각을 붙잡는 이미지와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밀도, 그리고 과장되지 않은 연출은 이 작품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겨울’이라는 시간과 함께 천천히 떠올려질 수 있는, 근래에 보기 드문 한국 영화다.
다만 이 영화는 스스로 선택한 범위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완성된 작품으로 남았다.
조금만 더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한 걸음만 더 넓은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이 이야기는 사랑을 넘어, 상처로 얼어붙었던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과 마주서는 용기로 인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을 다룬 깊고 특별한 작품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 지점까지 도달하지 않기로 한 선택이, 이 영화를 안전하고 단정하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더 큰 영화가 되는 가능성도 함께 남겨두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희에게>는 분명 좋은 영화다. 조용히 마음을 흔들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오래 남는 것은, 그 아름다움과 함께 “조금만 더 용기른 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윤희와 쥰과는 달리, 용기를 내지 못한 임대형 감독에 대한 아쉬움까지 포함해서, 이 영화는 봄이 오지 않은 겨울처럼 오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