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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혜 May 28. 2024

(6) 안녕, 가족

  내 마음은 복잡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엄마에게 힘이 되고자 한 선택인데 왜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지도 속상했고, 답답했다. 그런 내 마음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엄마, 아빠, 오빠의 세계를 이해한다고 해도 더는 떠안을 수 없었다. 선교 단체 교육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잘 모르지만, 내 마음에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시간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기차를 탔다. 간절히 바라던 교육을 향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교육이 끝나고 3개월 국내 여행이 시작되기 전, 집에 전화했는데 연락이 계속되지 않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한참 후에 통화가 되어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집 근처 공사 때문에 물이 역류하여 반지하에 있는 우리 집에 물이 들어왔다고 했다. 엄마는 가전제품을 하나라도 건진다고 나르다가 물살에 문이 닫히는 바람에 집 안에 갇혀 버렸고, 근처에 지나가던 TV 기자가 창문을 깨고 나오는 엄마를 촬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TV 프로그램을 아빠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는 정말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로 아빠가 집에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모든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는 배에 통증이 있었다. 급하게 담석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아는 분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빠른 수술일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서 엄마를 간호하고, 갑자기 들어오게 된 아빠를 위한 밥,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하기 위해 1시간 거리의 집을 오갔다.  엄마가 혼자 있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늘 급하게 사온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아빠는 TV로 운동경기를 시청하며 계속 집에 있었다.

대학교에 다니는 오빠는 친구들과 병원에 와서 엄마 병문안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다시 돌아갔다. 수련모임도 갔다 왔다.


  수술한 지 10일 후, 엄마는 응급실로 가야 했다.

수술을 한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하여 1시간의 거리를 구급차를 타고 이동했다.

급한 상황이 마무리될 즈음, 아빠가 병원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나에게 가까이 오더니 아빠는 입을 열었다.

“약을 종로에서 사서 쓰면 싼데, 도대체 왜 비싼 병원 약을 쓰는 거야? 굳이 비싼 대학 병원으로 와서는.”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머리에서 무언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고, 눈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말했다.

“아빠가 집안일이라도 해야 내가 시간이 나잖아요. 내겐 시간도, 힘도 없어요.”

그 뒤로 아빠는 다시 집을 나갔다.

아빠와 함께 온 가족이 잘 지내고 싶어 아무 말 없이 챙겼는데, 내 노력으로는 지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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