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누릴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는 자유를 좋아한다. 어떤 것에 대하여든 자유를 준다고하면 우선 좋아한다. 하지만 자유가 주어지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자유가 주어지기 전에 우리는 많은 기대를 한다. 자유라는 어휘가 주는 달콤함은 대단하기 때문이다. 자유라 하면 다 할 수 있을거 같고, 자신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없을거라 기대한다. 과연 그런가? 혹시 자유 그 자체가 당신을 무능력하게 하고 방해하지 않는가?
당신 앞에 수 많은 선택의 자유가 있다. 당신 옷장에 수 많은 옷들이 있고, 무엇을 입을지 선택하는 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여기서 과연 당신은 옷을 선택하는데 별 문제 없는가? 당신이 무엇을 입고 하는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심지어 그 누구도 당신의 선택에 간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옷장 앞에 한참을 서서 고민한다. 그리고는 '아 입을 옷이 없네..'라며 옷이 없음을 탓하면서, '교복 입을때가 편했지..'라며 당신의 자유를 불편해 한다.
당신의 옷장에는 입을 옷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선택의 자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신이 옷 선택에 자유가 없을 때를 생각해 보자. 학생일때 교복을 입게 된다. 교복을 입을때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단지 입어야할 교복을 입을 뿐이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신 옷의 선택에 자유가 없음을 불만스러워 할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자유롭게 옷장에서 옷을 고르고 싶어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토록 자유는 불편하다. 자유의 이름으로 당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책임져야한다. 자유롭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당신은 자유롭지 못 하다. 그렇기에 자유는 불편한 것이다.
자유가 없을 때는 자유를 그토록 갈망하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자유에 힘들어 하고 자유가 없는 상황을 그리워 하는 이런 부조리가 우리에게 발생하게 된다. 이런 부조리 이기에 자유를 버려야할까?
약간의 불편함 때문에 자유를 버린다면 우리 역사를 버리게 된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 삶의 자유의 확대하면서 진행되었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고 종교, 사회, 경제 다양한 측면에서 인간의 자유를 지키고 확대했다. 그 과정에 수 많은 충돌이 있었고 수 많은 사람이 희생 되었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 종교 전쟁이 일어났고,사회 경제적 자유를 위해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국내에서도 수 많은 항쟁과 민주화 운동이 자유의 쟁취를 위해 일어났었다.
이토록 힘들게 얻은 자유는 이제 우리에게 매우 당연하다. 그리고 당연한 자유는 이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앞에서 말한 옷을 선택한 자유는 자유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실제로 옷의 자유를 갖지 못 하는 사람도 아직도 많다.) 인류가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렸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강요한다면 반발하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내 자유를 버리겠다는데? 이것도 내 자유야!' 그렇가 그것도 당신의 자유다. 그리고 과거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당신들의 자유를 버렸던 사례가 있었다.
과거 나치는 결고 강제적인 힘으로 독일을 차지 하지 않았다. 당시 독일 국민들의 선택으로 독일을 통치했다. 나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독일 국민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박탈했다. 그리고 그 후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것이 스스로의 자유를 박탈한 사례였다. 그들은 자신의 자유를 박탈하고 나치 독일에 스스로를 귀속시켰다. 그리고 지금까지 독일은 그 선택을 반성한다.
나치 독일의 사례는 인간이 스스로의 자유를 박탈한 유명한 사례다. 당신의 자유를 버리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자유를 다시 쟁취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불편한' 자유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는 모두 정답을 알고 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의 삶을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다. 너무 자유스러워서 삶의 권태를 느낄지라도 그 권태마저 당신의 것이다. 권태를 느끼고 싶지 않으면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당신의 자유다.
하루의 할일을 누가 정해주고 식단이 정해져있다면 '편한' 하루가 될것이다. 자유가 없어도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 할것이다. 하지만 그 편함에 익숙해져 간다면 당신이라는 한 인간의 주체를 서서히 사라져 간다. 비록 자유는 우리 삶에서 불편해도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자유가 사라져 간다면 주체가 있을 자리도 같이 사라져 간다. 주체는 당신 그 자체이다.
편함과 불편함을 중에 누구라도 편함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부자유와 자유를 택하라면 우리는 자유를 택하고 싶어한다. 자유와 불편함은 동반한다. 불편함 없는 자유는 없다.
그토록 당신이 원하는 자유가 지금 당신 앞에 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고 자유를 택하는 것이 편하면서 자유를 잃어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당신에게 이제 묻고 싶다 '당신은 자유를 누릴 준비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