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는 아침] 산문집에서
출처: 산문집 블로그
프롤로그
우리 동네에 <산문집>이라는 책방이 있다. 둘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길에 알았다. 자주 가게가 들어서고 나가는 자리여서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섰는지 한 번쯤은 자세히 들여다보던 곳이었다. 불이 꺼진 걸 확인한 뒤에야 몰래 훔쳐보는 느낌으로 기웃거렸다. 드디어 우리 동네에도 책방이 생긴 건가. 호기심을 가득 안고 눈빛이 반짝거렸다.
책방의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간판에서 느껴지는 이 안정감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글씨체와 편안한 나무색 때문만은 아니겠지. 잠깐을 머물렀을 뿐인데, 깊이 남은 인상. 시선을 머무르게 하는 그림, 명료한 선들의 집합이 마음을 끌었다. 들어가 보고 싶은 그곳이 내 마음에 자리를 틀었다.
그 이후로 불이 켜진 산문집을 만나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딜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나지만, 선뜻 그 문을 열 수 있었던 건 책방의 이름과 간판의 글씨체와 그림 같은 선들의 집합 때문이라고 마음이 말하는 동시에. 다정하면서 편안하기까지 한 책방지기님의 곁을 내주는 방식이 나를 그곳에 머물게 했다.
아이와 함께 연필도 사고, 책도 골랐다. 유치원생인 둘째가 배고프다며 빨리 집에 가자 할 때 어여쁜 연필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그 덕분에 질문까지도.
책방지기님께 ‘요즘 작가들의 글을 읽고 싶어요.’ 크게 생각하지 않고 내민 질문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걷다>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이 책에서 만난 작가들의 글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중 성해나 작가의 ‘후보’라는 단편에서 ‘지음’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지음’은 서로의 소리를 아는 벗이라는 뜻으로, 상대의 소리뿐 아니라 침묵의 숨은 뜻까지 헤아릴 수 있는 그 특별한 관계를 말했다. 이에 딱 어울리는 우리, 가 있었다. 나는 글쓰기 친구들에게 ‘지음’이라는 모임명을 제안했고, 모두 무척 반겼다. 그렇게 동네책방 산문집에서 우연히 마주한 책은 내 삶 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책방에서 문을 연 3월 글쓰기 클럽 [무엇이든 쓰는 아침]에 와 있다. 산문집 책방 안이다. 산문집 안이다. 저녁에만 모임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침에도 열어주셨다. 내가 책방지기님께 그런 말을 했더란다. 아침에도 문을 열어주세요. 엄마들이 있어요. 말하길 참 잘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앉았다.
혼자 시작할 뻔했다. 다행히 우연히 필연적으로, 어제 만난 동네 친구 엄마에게 권했는데 너무 반가워하며 바로 신청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둘이 앉았다. 동네 친구지만, 동화를 쓰는 친구이고, 한 아이의 엄마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동지이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하나이니 더없이 기뻤다. 책방지기님까지 같이 셋이 책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아이처럼 날아갈 것 같은 이 기분을 어쩌지. 40년을 넘게 살아도 이 마음이 여기에 있다니, 참 고마웠다. 모두에게 나에게
동화를 쓰는 고된 작업을 연습 중인 동네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좋았다. 물론 친구는 무척 괴로워 보였지만, 나는 무척 신이 났다. 동네엄마로 만나 할 수 없는 얘기들을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간이 바뀌니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관심 있었던 동화를 쓰는 사람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니 이야기가 참 즐거웠다.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가 쓰는 동화가 궁금해 안달이 날 지경이었지만, 처음이니까. 진정해. 진정해. 이불
우린 모여 앉아 각자의 글을 썼다. 공책에 끄적이는 걸 좋아하지만 오늘은 왠지 노트북을 가져오고 싶더라니. 모두 각자의 기기를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소개에 들뜸이 잘 가라앉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고요하게 귓가를 걷는 소리를 배경으로 내 몸을 감싸는 책들의 향연 속에서 안정감 있게 나를 앉히는 이 향까지. 숲 속의 풀 냄새가 진하게 나는 이곳, 산문집에 있었다. 내 위치가 확실해지자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아, 진짜 나의 방학이로구나.
아이들의 긴 방학 끝에 엄마의 개학이 왔다. 배움이 열리는 시간 말이다. 이 안에서 무엇이든 써보고 싶다. 주로 과거의 이야기일 테고, 아이들에게 기댄 엄마의 이야기겠지만 그것으로 나의 배움을 시작해보려 한다. 산문집 안에서 산문을 쓰는 것으로. 집안에서 마음을 쓴 그 여정의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방학을 지나온 너에게
이불, 두 달간의 겨울방학 잘 있었어?
매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다가 나에게 쓰니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하다. 발바닥을 살살 간지럽히는 이 느낌. 으..
그런데 편지를 써보니 알겠더라.
마음을 전하는 글쓰기에 편지만큼 좋은게 없더라고. 내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그 마음, 이렇게 묻지 않으면,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고. 나조차도 말이야.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어. 너에게
어떻게 시간을 보냈어?
초등학생, 유치원, 어린이집 모든 기관에 아이를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해였는데 말이야. 복잡한 스케줄을 어떻게든 단순화시키는 게 나름 네 목표였던 것 같은데. 맞아?
기억에 남기기 위한 최선이었던 것 같은데.
애를 참 많이 쓴 것 같은데.
지금 너에게 어떻게 남아있어?
이제야 그 과거들을 하나씩 나열해볼까 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가 남기고픈 내 마음, 그건 무얼까.
내게 남은 건..
궁금해하면서 말이야.
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