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온, 방학일기 (너에게 어떻게 남아있어?)
산문집에 앉아
마음에 앉아
이불
한 주가 흘렀다.
개학의 시간이 열렸다.
둘째 아이는 처음, 학교에 갔다.
적응한 듯 보여도 도전의 연속인 듯하다.
아침부터 연신 눈물이 나는 둘째다.
혼자 도서관에 가 있을 일이 두렵 다한다.
엄마, 안아줘
눈물을 닦아주며 말한다
네가 두렵다는 걸 아는 일은
무척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야
쿵쿵이 알지? 쿵쿵이는 항상 함께 있어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지금은 좀 힘들지만, 그 시간이 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네 할 일을 하게 될 거야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마치 어제 했던 일처럼 그렇게
하게 될 거야
걱정은 이 정도로 충분해
널 믿어
마음의 파도가 요동치는 딸아이와 대화하며 마음의 자리가 난 곳에 비집고 들어가 털썩 앉아본다. 이 아이는 얼마나 두려울까?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두려움 너. 너를 가리킨 손가락의 끝을 따라가 보니 너를 닮은 내 두려움도 한 웅큼 자리잡았다. 찾았다. 내 두려움, 너어.
새해를 맞아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향했다. 첫째의 생일을 맞아 여행을 떠나는 방법이자, 부산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이 흐르는 곳으로. 하지만 첫발부터 삐끗거렸다. 첫째에 이어 둘째가 며칠 새 독감에 걸렸다. 부산을 내려가는 일이 영 내키지가 않았다. 불안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많이 컸고, 부산에 내려가고 싶은 가족들의 기대는 모두 같았기에, 우리 부부는 가보기로 결정했다.
우린 정해진 스케줄이 있었기에 이동이 잦았다. 부산에서 대구로 다시 고령까지. 긴 이동 탓인지 부산에 내려온 지 삼일 만에 둘째가 몸이 안 좋아 병원을 찾았다. 어린 막내도 겸사 같이 진료를 받았다. 부산 오기 전 누나들과 잘 분리를 해놓은 상태였고, 컨디션도 무척 좋았기에 우리끼리는 안심하고 있었다. 병원 가는 길에 같이 가서 약은 받아놓자는 계획이었다.
그 단순한 사고의 흐름은 의사 선생님 한 마디에 와장창 깨져버렸다. 폐렴이에요. 독감 검사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부부는 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컨디션이 이렇게 좋은데. 하지만 선생님이 청진기를 막내 가슴에 댈 때 나도 들었다. 그 거친 숨소리를.
입원해야 해요. 선생님, 저희 내일 서울 가야 하는데요. 보인 길이 엉망진창 꼬이기 시작하자, 우리 부부는 각자의 두려움에 길을 잃었다. 신랑은 내일 올라가야 회사를 갈 수 있었다. 첫째는 학교의 방학식을 아직 앞두고 있었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아직 못한 상태였다. 나는 입원이 두려웠다. 경험이 없었다.
두 돌도 안된 남자아이와 함께 입원하는 일, 이게 그토록 두려울 일이던가. 아이를 셋이나 키우면서 내가 두려워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나를 탓하기 시작하니 신랑이 미웠다. 회사 갈 생각이 먼저 나는 것 같아서 미웠다. 아이가 아픈데 상황을 믿지 못하고 나한테 그 책임을 전달하는 것 같아 싫었다. 모두 내가 가진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입원을 미룰 수는 없었다. 이 나이대에 안정적으로 치료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까. 두렵지만 해내야 하니까. 이제야 풀어서 마음에 앉아 보니 이것도 보이는 것이지. 그때는 묵직한 돌 하나 안고 해야 할 일들을 먼저 생각했다. 누구나처럼.
입원 첫날은 둘째, 셋째, 우리 부부까지 한 방에서 서로를 안심시키며 하루를 보냈다. 막내의 다이내믹한 활동량으로 손에 꽂힌 주삿바늘이 뽑힐까 노심초사하며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가장 큰 공포였다. 못하게 하고, 그렇게 하고, 못하게 소리치고, 또 그렇게 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 우리는 또 그렇게 어제 있었던 일처럼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해내고 있었다.
둘째가 하루 만에 퇴원을 하고, 신랑은 서울에 올라갔다. 막내와 나는 단둘이 남겨졌다.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감쌌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두려워하는 내 자신을 보는 것은 편치 않았다. 별로였다. 하지만 실제 행동은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냥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그 두려움이 자리를 내고, 나는 지나갔다. 오늘 그 자리를 확인하며 둘째의 두려움을 마주한다. 둘째가 느낄 그 두려움의 시각 위에 우린 함께 있다. 나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이가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해내고 있을 뿐. 나는 쓰고 있을 뿐이다. 카페에 앉아 혹시라도 걸여 올 전화를 기다려보기도 하고, 이 시간쯤에 울고 있을 아이가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두려움이 만든 그림자 안에서 우리 둘이 잠시 곁에 머물러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두렵다며 안아달라고 하는 둘째에게 나는 속삭였다. 엄마는 어제 아빠 때문에 가슴에 불이 났어. 속이 상해. 둘째에게 일러바치는 듯 조잘거리며 조그마한 소리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마른 눈물을 닦아내며 둘째는 물었다. 왜? 아빠가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했어. 자꾸 밉네. 어쩌지. 먼 곳에서 신랑도 거들었다. 둘째야, 아빠가 안 그랬어. 네가 얘기 좀 해줘.
어느새 엄마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아무 이유 없이 아빠, 미워라고 외치는 둘째.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며 서로의 두려움에 기댈 자리를 마련한다. 나는 둘째에게, 둘째는 나에게 기댄 채 아침을 일으켜 세우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음의 자리를 쓸고 닦는 건, 너와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임이 분명하다.
개학을 맞은
엄마의 방학일기
마음일기
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