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일기] 아픔을 잠시 멀리하는 방법
입 안에 염증이 생겼는지 음식을 먹는데 불편했다. 어금니 쪽인지 조금 씹다 보니 아팠고, 양치질을 하는데 차가운 금속을 댄 듯 시렸다. 아픔의 시작점을 분명히 알았지만, 하는 일을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던 운동을 하면 체력이 좀 나아질 거야' 라며 스스로를 토닥였다. 하지만 다음날 침을 삼켰는데 목이 아팠다. 염증이 눈에 보이는 듯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팠다.
아침 시간에 신랑이 없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새벽에 잠에서 깼다. 아이들은 학교에, 어린이집에 가야 했다. 아픈 나와 아이 셋이 남겨졌다. 아파도 어른이어서 잘 참고 아이들을 돌보면 좋으련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두 딸들이 걱정 어린 눈빛과 말을 건네왔다. 막내만이 아이답게 하던 대로 울어댔다.
둘째는 잘 안 먹던 밥을 끝까지 묵묵히 먹어줬고, 원래 책만 보던 첫째는 내가 없는 틈에, 본인의 아빠처럼, 침대 위에서 막내와 놀아주었다. 나는 평소에 러닝을 뛰는 일보다 더 아주 빠른 속도로 뛰어가 병원의 번호표를 뽑았다. 나는 목표를 향해 뛰는 그 순간만큼은, 분명 머리가 아픈 걸 잊었다. 찬 바람 때문이기도 했고, 아이들 때문이기도 했다.
씩씩한 아이들이 자신의 갈 길을 가 준 덕에 나는 홀로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아프면 늘 쉬는 나지만, 오늘은 <무엇이든 쓰는 아침>, 무아가 있는 날이었다. 약을 챙겨 받자마자 빠른 속도로 집에 가서 집안을 치우고, 니은님을 만나면 되었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친정 엄마가 집에 와계셨다. 아프다고 말해버렸는데, 어딜 간다는 얘기를 하는 게 좀 난처한 마음이었다.
엄마는 집안을 빠르게 손보고 계셨다. 제일 지저분한 싱크대를 시작으로 꽉 찬 쓰레기통, 밀린 빨랫감. 눈에 보이는 일감들을 차례대로. 사실 이것도 다녀와서 알았다. 나는 나대로 걱정하는 아빠를 안심시키기 위해 맛있는 쑥찹쌀떡을 맛 보이고 있었고, 책방에 가기 위해 소리 없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 그런데 오늘 책방에 가야 해. 아픈데 어딜 가. 찹쌀떡이 맛있다고 칭찬하면서도 걱정을 게을리하지 않는 아빠를 두고, 엄마는 음식물 쓰레기를 손에 잡은 채, "어 그럼 우리 빨리 가야겠다. 얼른 일어나요. 찹쌀떡 맛있네. 얼른 나가요."
테토녀 엄마는 순식간에 집을 비우고,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아픈 나를, 비로소 인지하게 돕는 나의 천사. 문이 쾅 닫힌 문 앞에 잠시 넋 놓고 서있다가 서둘러 짐을 챙긴다. 나도 그렇게 엄마처럼 빠르게 나의 시간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엄마가, 아이들이 돕는 시간이다. 몸은 등 떠밀 린 것 같아도 달려야 맞다. 니은님과 깔깔깔 웃어대며 우린 동네책방 <산문집> 앞에 다다른다. 아, 좋다. 그런데 좀 아프다.
아파도 갈 곳이 있어 참 좋다. 아파서 아프다고 얘기해서 좋고, 아픈 순간을 몸과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시간도 좋다. 생각보다 글이 안 써져서 지난주와 비교되는 마음이 생겨나긴 하지만, 책방지기님과 니은님과 그냥 앉아있는 시간이 좋다. 아프다 자각하는 이 순간도. 책방의 향기가 그 고통을 짊어지고 날아간 건 아닐까. 이런 공간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게 되길. 아프지만, 아픔을 생각할 수 있는 방법. 책방에 있기, 글 쓰는 사람들 안에 있기.
'아, 이제 좋은 걸 했으니 집에 가서 어제 못 본 나는 솔로를 시청하며 누워야겠다. 밥은 먹고 가야 하니 니은님과 먹고 집에 가야지' 든든한 오후를 생각하며 밥집에 갔다. 우연찮게 동네친구들이 밥집에 함께 자리를 틀었다. 우리의 수다는 속도를 냈다. 빠르게 흘러가는 육아시간 속에도 친구들을 만나니 우리의 어제오늘 일은 천천히 태엽을 감으며 길어 올려졌다. 그리곤 그 속에 자리 잡은 그들의 마음 한 자락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시원하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같이 울고, 웃는 일이 이렇게 가능하구나.
각자의 개성과 성격은 그 모양과 색깔이 너무나도 다르지만, 서로에게 다정한 눈을 맞추고, 배려하는 그 결은 같았다. 물론 흘러온 시간 속에 한 점의 흠도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아픈 일도 잠시 잊을 수 있는,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뿌리 깊은 내 의심마저도 걷어버리게 하는, 그곳에 있었던 지금 나의 사람들, 친구들. 내 체력에 분명히 무리가 되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내게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이때 찾게 되는 나의 반려인, 짝꿍은 어디에.
하루에 연락을 한 번은 주는 신랑인데, 유독 오늘은 연락이 없다. 갑자기 불현듯 오늘 아침에 아픈 티만 팍팍 내고, 말을 하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나름의 건강한 배려였건만. 집에 돌아와 엄마의 고마움을 떠올리는 동시에 괘씸한 신랑을 떠올리며 문자를 보냈다. 와이프가 아픈데 한 번을 묻질 않네. 살 떨릴 문자다. 다행히 휴대폰은 잡고 있는지 전화가 왔다. 아팠어? 몰랐어. 미안해. 웃음이 나왔다. 그러기도 잠시 무섭게 빠른 속도로 얘기를 하다 보니 발언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돌아오는 정답은, 빨리 갈게.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하루를 보낸 나의 저녁은 세 아이가 함께 목욕하는 걸 보는 구경으로 막을 내렸다. 빠른 신랑의 귀가 덕분에 우리 다섯 식구는 모두 모여 앉았다. 신랑이 사 온 트위스터를 먹었다. 특식이다. 케이에프씨. 본인이 그걸 사온 게 무척 뿌듯했는지, 잘못은 잊어버린 듯하다. 아, 예전 같으면 파이팅이 넘쳤을 텐데, 이제 그쪽에 시간을 쓸 여력이 없다. 체력도 없다. 아직 아픈 것 같다.
이번 상반기가 나의 마지막 육아휴직의 날이다. 난 하반기부터 일을 한다. 이토록 안정되었을 때 일을 하게 된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때는 오는 법, 이제는 더 많은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늘 마음만은 진심이었지만, 마음먹은 만큼 제대로 되지 않던 지난날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의 개학모드다. 이곳에서 지금을 살며 그날을 준비하려 한다.
마음의 파도
일을 곧 한다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내 쓰임이 있는 곳으로
지난번보다 더 잘 준비하고 싶다
마음만 들고 가지 않을 테다
그 준비의 기록을 시작해볼까 한다
방학일기 한 편
개학일기 한 편
두 편의 숙제를 제출하고
이제 다음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동화책을 읽어볼까 한다
좋아하는 문장은 읽고 쓰고
글짓기해가며
어떻게 같이 읽고 쓸 것인지
고민한 흔적을 남겨봐야지
너에게 어떻게 남았어?
먼저 온 미래를 읽으며
미래에 있는 아이들과
만날 날을
고대하며
좀 더 세심하고 깊이를 더해보자
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