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실바람
지난 연재의 바람처럼
동화책을 읽으며 글을 쓰려했는데
잘 되지가 않았다
한 주를 못썼다
나답게 물었다
너가 언제부터 책이랑 이렇게 친했니?
질문은 내 머리를
딩
하고 쳤다
그리고 써 내려간 글이다
마음의 책
마음의 집을 지었었고
이젠 마음을 출판해 볼까
책으로 불어 온 바람
마음에서부터
시작해 볼까
마음의 책
: 책을 한 장 넘기면 바람이 불어왔다
#1장 실바람
- 까막눈, 책이 없는 날에 시작된 이야기
어린 시절, 내겐 책이 없었다. 물리적으로 책이 없다는 얘기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닌 건 90년대다. 나라 살림이 부족한 시절도 아니었고, 주변에 책이 없는 환경도 아니었다. 다만 늘 불던 교육열풍이 우리 집에도 조금 더 세게 불고 있었다. 책은 없어도 문제집은 있었다. 엄마가 집에서 먼 광화문까지 가서 사 온 문제은행이라는 문제집이 있었고, 논술 선생님이 독후감을 쓰라며 내게 쥐여준 책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내게 남은 책은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는 순한 아이였다. 공부하는 방법은 몰랐지만 시키는 대로 했고, 성적도 제법 괜찮았다. 부끄럼이 많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말을 아꼈지만 친구들과는 잘 어울렸다. 그래서 나름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 대한 경험을 떠올려보니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마음 놓고 편하게 책을 읽었던 기억이 없었다.
만화로 된 '꼬마 니꼴라'나 '삼국지' 같은 책은 읽은 기억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용이 선명하지는 않아도 기억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재밌게 읽었다는 뜻이니까. 한편 요즘 부모들 중에는 아이들에게 만화책을 못 읽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 이유가 혹시 나와 같은 경험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화책은 잘 읽지만, 글밥이 있는 책은 점점 읽지 못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제법 공부는 하는 까막눈이 되었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면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였다. 중학교에 가서는 책을 읽을 시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은 시험문제를 통해 제목을 알게 되었고, 정답 해설을 통해 내용을 배웠다. 읽는 기술도 없었으니, 책이 내 삶에서 밀려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책은 내 인생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마침 고등학교 시절, 인터넷이 시작되면서 재미있는 것들이 무척 많아졌다. 팬픽에 열광했고, 팬클럽을 만들었으며, 그들의 음악과 방송활동을 미친 듯이 소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컴퓨터로 소설을 읽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오빠들'이 주인공인 소설, 팬픽. 겉으로는 그들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을 따라다니는 팬들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더 잘 읽혔다. 그 안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읽으며 깊이 몰입해 본 경험은 내게 무척 의미 있는 일이었다. 말하고 쓰는 일이 나 자신을 알게 해주는 방식이라면, 몰입해 읽는 일은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해 보는 일이었다.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일을 놓지 않았기에, 나는 나를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첫째 아이는 책을 좋아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책을 사랑하는 아이'라고 말해줄 정도였다. 그 아이를 보며 나는 알게 되었고, 또 깨달았다. 책이 주는 안락함에 대해. 내향적인 아이였기에 처음에는 책으로 도망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도망'이 조금 부러워졌다. 도망이 아니었다. 정말로 책과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해 보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었고, 고요 속에서 쉬고 기대는 일이었으며 나에게 집중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를 놓지 않았던 내게, 다행히도 나를 품어 줄 책이 찾아왔다. 서점 앞에 줄을 서게 하고, 밤을 새워 책을 읽게 만들고, 영화로 그 세계를 몇 번이고 확인하게 만드는 날들이 찾아왔다. 바로 '해리포터'였다. 누가 읽으라고 하지 않아도 밤새 끌어안고 읽었고, 다음 권이 나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책이 나를 품어 안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책의 품에 안겨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실바람이 불어왔다.
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