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을 경외하는 삶
안녕하세요.
하루를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책 한 구절을 소개해드리는 숙제강박입니다.
오늘은 인디언들의 책을 가져왔습니다. 인디언 추장이나 전사들의 연설을 모은 책인데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제목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연설들은 유럽에서 미국 대륙으로 백인들이 건너갔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연설문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얼굴이 흰 사람들은 얼굴이 붉은 인디언들에게 땅을 내놓고 일정한 지역에 모여 살아가기를 강요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종교를 포함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인디언들은 얼굴 흰 사람들의 제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디언의 개념에 의하면 대지는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고, 신이라는 것은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 만물에 깃들어 있는 정령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결국 이들은 고도로 발전한 백인들의 기술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피와 살이 튀는 격렬한 저항의 과정이었고, 이 책의 연설문들 또한 격렬한 저항의 정신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그중 한 구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자연을 대하는 얼굴 흰 사람들의 자세가 인디언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어렸을 때 받은 교육의 차이 때문이라고 믿게 되었다. 나는 종종 백인 소년들이 도시 골목에 모여 서로를 떼밀며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곤 한다.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기능으로부터 멀어진 채 그런 식의 무의미한 짓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깨어 있음도 예민함도 없이, 주위 환경에 둔감한 채로 어리석은 놀이를 되풀이한다. 자연이 주는 균형 감각이나 자극을 상실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자연 속에서 자란 인디언 아이들은 주위 세상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들의 감각은 서로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생각조차 없이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관찰은 분명히 그 보상을 가져다주었다. 흥미와 놀라움과 경탄의 마음이 커지고, 생명 현상이 단순히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수천수만 가지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놀라운 그 무엇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런 깨달음은 라코타 족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삶은 생동감 있게 맥박 쳤으며, 세상에는 우연하거나 진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인디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삶을 살았다. 첫 숨부터 마지막 숨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인디언들의 시선은 서구 중심의 오늘날의 시선과 많이 다릅니다. 감각을 최대한 예민하게 유지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느끼고 감동하고자 하죠.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돈과 효율에 대한 감각 외엔 모든 것을 닫아 버립니다. 목표가 없는 상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미래의 목표를 위해 과감하게 집중합니다. 우리에게 현재란 미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현재를 느끼는 감각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현재를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는 쉽게 인디언의 눈과 귀를 갖지 못합니다. 자연 속에서도 풀과 바람, 햇살을 느끼는 대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쁩니다. 조금만 멍하게 있어도 시간을 낭비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세상을 예민하게 느끼고 자연에 경탄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느끼지 못한 채 흘러 보내지 않으려면 인디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감각을 깨워보세요. 현재를 즐기라는 조언은 당장 모은 돈을 쓰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보다 더 심오한 뜻일지도 모릅니다.
숙제강박이었습니다. (유튜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