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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Jan 01. 2020

노란 망고의 달콤한 추억 (인도 바라나시로 가는 길)

인도,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맛본 스치는 인연들과의 망고처럼 달콤한 추억


2010년 1월

침대칸 3층에 누운 사람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그 무뚝뚝했던 시선들이 모두 나의 손가락과 입술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내가 부르는 노래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저 기타에서 튕겨져 나오는 선율과 내 입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이국의 말로 된 멜로디를 들을 뿐. 노래에 집중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자리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간간이 마주치는 눈빛들 속에 아까와는 다른 다정함이 묻어있다. 한곡이 끝나자 누군가 앵콜을 외친다. "베리 굿, 유 꼬리안 넘버원 싱어, 땡큐, 굿나잇" 나의 공연은 그렇게 바라나시로 향하는 야간열차 안에서 시작되었다.




인도로 가는 길

나는 서점에서 분주히 책을 나르고, 문제집을 찾는 학부모를 안내하다 문득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 표지에는 "나는 걸었다. 세계는 좋았다"라고 적혀있었다. 걸을 때마다 자신이 배워온 세계의 허위를 목격했다던 작가의 말이 날 끌어당겼다. 나는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 앞의 숱한 갈등 속에서 마음이 언제나 방랑 속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헬기 하강 훈련의 생명수당을 모아둔 군 월급통장을 털었다. 델리행 티켓을 결제했는데 묘하게도 딱 '0'원이 남았다. '0'이라는 숫자를 본 순간 이상한 희열이 느껴졌다. 무엇 하나를 깨끗이 비워낸 기쁨이 한편으로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숨이 턱 막히는 더위, 한국의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의 열기였다. 어두운 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짙은 안개로 전혀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엔화가 환율에 유리하단 말에 엔화와 달러만 챙겨 온 나는 급히 환전소를 찾았지만 이미 영업은 종료된 듯하였다. 그때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고향에서 사촌 형의 소개로 딱 한번 술자리를 같이 했던 동년배 친구 석남. 그와는 고향의 길거리에서 딱 한번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또 그렇게 우연히 마주하게 된 우리는 함께 가기로 했다.


나의 낯선 친구 석남은 인도에서 유학 중인 친구 지호를 만나러 인도에 왔다고 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지호는 우리를 차에 태워 자신의 자취방으로 안내했다. 그의 집은 멀었다. 가는 길에 잠시 맥도널드에 들렀다. 루피라곤 땡전 한 푼 없는 나에게 지호가 마하라자 빅맥을 대접했다. 인도의 향신료가 가득 뿌려진 마하라자 버거는 맛있었다. 맥도널드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바깥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접근했다. 겨우 7살 정도밖에 안되어 보이는 꼬마들은 "텐 루피 플리즈"를 외치며 우리를 포위했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차에 탄 우리에게 아이들은 돌을 던졌다. 지호의 차에 돌멩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실감했다. '이 곳이 인도구나'

지호의 아파트는 꽤나 높았다. 창밖으로 멀리 델리 도심의 불빛이 보일 뿐 안개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밖으로 나가 내가 처음 본 것은 엄청나게 크고 흰 황소 한 마리였다. 놈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혼자 터벅터벅 걸을 뿐이었다. 아무 말 없이 덩그러니 길에 놓인 녀석의 눈망울은 초롱초롱했고 그저 깊은 상념에 잠긴 듯했다. 황소는 오로지 자기의 생에 집중하는 듯했다.


우리는 릭샤를 타고 빠하르간지로 향했다. 릭샤는 자전거로 된 인도의 인력거다. 릭샤왈라는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힘껏 페달을 굴렸다. 그의 등 뒤로 흐르는 땀은 이내 셔츠에 흠뻑 젖어들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릭샤왈라는 분명 힘들어 보였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만 가득 안고 델리 여행자들의 첫 번째 쉼터로 꼽히는 빠하르간지에 도착했다. 릭샤왈라는 빠하르간지에 다다르자 우리에게 꼼수를 부렸다. 괜스레 복잡한 길로 가는 가 하면 '숙소는 정했냐', '좋은 곳을 소개해주겠다' 말을 걸며 같은 길을 빙빙 도는 것이었다. 사설 여행사에 붙잡혀 바가지를 쓸 뻔한 우리는 지호의 단호함 덕분에 여행자 거리에 다다랐다. 릭샤왈라의 뒷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우리의 마음이 처음으로 민낯의 인도에 데었던 순간이었다.

석남과 지호와 작별하고,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인도 대륙을 횡단하는 시브강가익스프레스에 올랐을 때, 내 자리 맞은편에 앉은 인도 남자들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이빨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입술을 굳게 다물고 근엄한 얼굴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나의 옷차림과 표정, 짐꾸러미 등을 샅샅이 훑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던 나는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기차를 놓칠까 부리나케 뛰어오느라 온몸에는 땀이 흘렀다. 땀을 닦으며 내 자리에 앉아 있는 인도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퉁명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휙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 남자는 이후로도 내내 내 옆에 앉은 인도인과 수다를 떨었다. 그들 중간에 끼인 나는 불편하게 앉아 창밖의 공허한 들판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길고 긴 침묵의 열차 안에서 맞은편의 젊은 인도 청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이 기타가 너의 것이냐?"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너의 기타를 보고 싶다"라고 말했고, 기타를 보고 나선 "기타를 쳐줄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오로지 내가 만든 노래만 연주할 수 있는 초보라고 말했다. "네가 만든 노래가 있다고? 정말 듣고 싶다. 한 번만 쳐줘" 때는 늦은 저녁, 승객들은 하나 둘 객실 좌석을 침대로 바꾸고 있었다.

노래를 마친 후 같은 칸 승객들의 박수소리가 나에게는 생소했다. 전혀 다른 언어로 부른 낯선 노래에 그토록 열광하며 박수를 치던 사람들, 그중 한 명은 내게 잘 들었다며 따뜻한 짜이 한잔을 대접했다. 맞은편 남자들의 근엄한 표정은 미소로 바뀌었고, 한 아저씨는 목적지인 바라나시에 도착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이거 한 번 먹어봐" 라며 자신의 보따리에서 먹을거리들을 건넸다. "압 꺄 남 꺄 헤?"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곧 나 역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알게 되었다. 우리는 마주 보고 각자의 행선지를 묻고, 고향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기차를 타게 되었는지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기차는 연착되었다. 시브강가익스프레스, 고속 열차라는 뜻이 아닌 가? 바라나시로 향하는 완행열차는 20시간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맞은편 자리에 앉았던 인연들과 작별을 고하는 일이 꽤나 서글펐다. 내내 먹을거리를 주시던 아저씨는 내 손을 꼭 잡고 좋은 여행하라는 덕담을 전했고, 고향으로 휴가를 떠나는 중이라던 군인은 갑자기 내게 자기네 고향에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짐을 짊어지고 기차에서 내렸을 때, 나의 첫 번째 인도 친구들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순간의 눈빛들을 잊을 수 없다.



2010년 8월

원숭이가 속옷을 훔쳐간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노팬티여도 전혀 두려울 게 없다. 첫 번째 인도 여행에서 무겁고 많은 짐이 곧 업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애초에 칫솔과 일기장과 필기구, 낡은 필름 카메라만 분홍색 보자기에 싸서 손에 들고 이곳에 왔다.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이곳 도미토리 사람들은 다들 서로 안 씻은 일수를 경쟁한다. 알라딘 바지를 펄렁이며 한 끼에 20루피짜리 아침식사를 하러 길을 나선다. 매일 같은 자리에 서있는 자유 소 점박이와 인사를 나눈다. 반년 전에 비해 녀석의 배가 더 빵빵하다. 반가워서 괜스레 툭 치고 지나가 본다. 가트에 나가 멍 때리고 있으면 시바와 소누가 꽃을 사라고 다가온다. 반년 전이나 지금이나 녀석들은 꽃을 팔려고 안달이다. 이 어리고 약은 철부지 소년들이, 동네 슈퍼 아저씨가, 짜이집 만수가 다시 돌아온 나를 알아보고 반긴다. "웰컴, 호미! 보훗 아차!"



Let's go to see the Ganga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뱅갈리토라의 좁은 골목은 허벅지까지 물이 차올랐다. 사람들은 물살을 헤집고 분주히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분명 게스트하우스를 나올 때 벵갈리토라 거리마다 덩그러니 놓인 엄청난 크기의 소똥들을 봤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양도 엄청났다. 발끝에 미끄러운 정체불명의 물질들이 느껴질 때마다 아침에 봤던 그 소똥들이 생각났다. 잘못하다 넘어지는 순간 똥물이 입으로 들어오겠지. 이러다 숙소까지 헤엄쳐서 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찔한 상상을 하며 길을 헤맸다. 나의 초조한 눈동자가 애처로웠던 걸까? 한 청년이 말을 걸었다. "길을 잃은 거야? 벵갈리토라는 좁고 복잡해서 길 잃기 십상이지. 숙소가 있는 곳에 무엇이 있어?" 판데 가트, 쿠미코 하우스가 있는 판데 가트! 청년은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심쿵, 같은 남자지만 그 순간만큼은 백마 탄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 좁은 골목을 지나 가트가 즐비해있는 갠지스 강변에 다다랐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가 무섭게 청년은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숙소에 도착하자 샨티 할아버지가 나를 불같이 꾸짖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데 어디까지 나갔다 온 거냐. 날도 어두운데 길을 잃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얼른 들어가서 씻어라. 그 잔소리가 정겹고 고마웠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위층에 올라가 도미토리 사람들에게 자초 지종을 고했더니 다들 껄껄 웃는다. 낯선 남자의 손에 이끌려 똥물을 헤집고 돌아왔다며 연락처는 받았냐고.

쿠미코 하우스의 가장 꼭대기층 도미토리에는 밤마다 파티가 벌어졌다. 한국에서부터 고이 챙겨 온 고추장과 김이 나오기도 하고, 벵갈리토라 길목에서 몰래 산 럼이 나오기도 했다. 어떤 이는 라자스탄에서 산 비단이라며 갑자기 꺼내 든다. 누군가는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이곳 도미토리에서 만나 어느새 연인이 된 남녀는 서로의 몸에 헤나로 그림을 그린다. 별다른 안주가 필요 없었다. 각자가 경험한 인도 대륙에서의 경험담이 훌륭한 안주가 되었다. 비단 장수에게 사기당한 이야기, 낙타 사파리 중 낙타에서 떨어진 이야기, 여행길에 잠시 만났던 한 남자를 그리워하는 처자의 연애상담, 여행자들은 밤새 이야기를 하다 지쳐 잠들곤 했다.

매일 아침 8시가 되면 샨티 할아버지가 3개 국어로 숙소 사람들을 깨운다. "굿모닝, 에브리바디. 오하이요 고자이마스. 아사 고항오 타베마쇼. 밥 먹어"  아침을 먹을 사람들은 1층으로 내려가 쿠미코 할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거른 사람들은 느지막이 일이나, 갠지스강이 보이는 가트에 하나 둘 모인다. 힌두인들에게 어머니의 강 '강가'라 불리는 갠지스. 도미토리의 누군가 "Let's go to see the Ganga"라고 말하면 눈을 뜬 몇몇이 따라나선다. 

가트는 다른 숙소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는 사랑방이다. 판데 가트 앞 순재네 짜이에서 나는 항상 핫 레몬 진저를 마셨고, 그곳에서 시바와 소누를 기다렸다. 반년 전 강가에서 만난 시바와 소누는 디아라 불리는 꽃잎 초를 파는 소년들이다. 나는 왠지 시바보다 소누에게 더 마음이 갔다. 소누의 눈빛은 언제나 깊고 우울해 보였기 때문이다. 소누는 반년 전 가트 앞에서 만날 때마다 나에게 꽃을 사달라고 졸랐다. 녀석은 처음에 100루피를 말했다가 안 산다고 하니 다음날 50루피, 그다음 날 10루피에 팔았다. 이번 여름에 다시 만나고 나서는 자기의 신발이 다 떨어졌으니 샌들을 사달란다. 나는 이리저리 둘러대며 소누의 눈길을 피했지만, 바라나시를 떠나기 전날, 여행을 함께 한 친구가 소누에게 새 신발을 사주었다. 소누는 샌들을 안고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 바라나시를 떠나던 날, 소누는 내게 언제 다시 오냐고 물었다. 나는 언젠가 다시 오겠노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2012년 2월

판데 가트 앞에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시바와 소누에게 산 디아로 무대를 장식한다. 촛불이 모두 켜지자 공연이 시작된다. "2년 전 이곳 바라나시에서의 추억으로 만든 노래 'yellow mango's sweet memories'라는 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노란 망고의 달콤한 추억

2년 전 여름 뉴델리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 함께 공항에 가기로 한 일행이 보이지 않아 식당에 짐을 맡겨놓고 그를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날은 덥고 온 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목이 말라 미네랄워터를 살만한 상점을 찾던 중, 길거리의 망고주스 가게를 발견했다. 주인은 노란 망고를 리어카에 잔뜩 쌓아놓고 손님이 올 때마다 즉석으로 망고를 갈아주고 있었다. 30루피를 건네고 노란 망고 주스 한잔을 손에 들었다. 그것은 마치 걸쭉한 호박죽처럼 보였는데 한잔 들이켜는 순간, 나는 여행의 모든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다. 언젠가 다시 이 망고주스를 마실 날이 올까 생각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인도는 여전히 여전했다. 하지만 내가 항상 들고 다니던 낡은 필름 카메라는 스마트폰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 카페에 들릴 필요 없이 숙소의 와이파이로 국내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기차표를 끊고 시브강가익스프레스에 탔다. 기차도 연착하지 않았다. 릭샤왈라를 불러 판데 가트로 향했다. 낯익은 얼굴들과 인사하고, 샨티 할아버지가 있는 쿠미코 하우스로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하얀 수염도, 게스트하우스를 지키고 있는 똥 먹는 개 뽀삐도, 도미토리를 가득 메운 여행자들도 다들 여전하다.

하늘색 타일이 촘촘히 박힌 쿠미코 하우스의 옥상에 올라 갠지스를 바라보았다. 옥상에서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다른 여행지를 포기하고 바라나시에 눌러앉아 타블라를 배우던 일상들, "띠레 깃따 다 띳 다아" 장단을 입으로 외우며 시타르 주자와 합주를 하던 게으른 시간들이 생생히 기억났다.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맞은 편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온전히 채워지던 시간, 함께 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모두 생생했다.


다시 만난 친구들, 도미토리 사람들과 함께 판데 가트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포스터를 만들고, 누군가는 사리를 입고 춤 연습을 하고, 누군가는 여기저기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며 입소문을 낸다. "우리 가트에서 공연하자"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들이었다. 오후 5시 37분 판데 가트 앞 여행자들과 현지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공연은 나의 기타와 노래로 시작해서 도미토리 친구들의 춤, 국악소녀의 해금 연주로 채워졌다. 길 가던 인도인 한 명도 무대에 함께 올랐다. 공연이 모두 끝나갈 때 즈음, 무대 위를 환히 밝혀주던 디아의 촛불이 하나 둘 꺼져갔다. 한 인도인이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보훗 아차 헤"


2년 사이, 시바와 소누는 키가 훌쩍 컸다. 매일 저녁, 가트에서 꽃잎 초를 만들어 내게 10루피짜리 디아를 100루피에 팔려고 했던 그 소년들이 이제는 나에게 비싼 값에 물건을 팔려는 거리의 상인들에게 "내 친구에게 바가지 씌우지 마세요"라고 하며 대신 화를 내준다. 사실 소년들의 디아를 5루피에 샀다는 처자도 보았다. 하지만 괜찮다. 녀석들도 엄연한 인도의 남자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


세 번째 인도였지만, 나는 한 번도 타지마할을 본 적이 없다. 타지마할을 보러 아그라까지 가기엔 바라나시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언제나 델리에 도착하자마자 바라나시행 기차표를 끊고, 주야장천 바라나시에만 머물다 온다. 첫 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를 바라나시로 잡은 것이 내 잘못이었다. 아쉽지만 여행은 도미토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대체한다. 각자의 경험에 대해 과장이 조금 버무려진 여행담을 듣는 편이 나에게는 언제나 더 풍성한 여행이 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을 더 잘 알아갈 수 있어서, 그래서 그 편이 더 이득이다.

  

다시 또다시 찾아온 바라나시는 더 이상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샨티 할아버지와 쿠미코 할머니, 그리고 내 친구 시바와 소누가 있는 곳,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와야 할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갠지스 강 너머로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 벅차오르던 어느 아침 풍경이, 화장터 옆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불꽃을 바라보던 한 노인의 눈빛이, 좁은 골목길에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돌며 엄청난 크기의 똥을 싸놓던 점박이가 그리울 것이다. 가트에 앉아 하염없이 갠지스를 바라보며 삶의 길을 묻고 방황하던 이십 대의 내가 머물러 있는 이 곳, 바라나시에서 나는 또 한 번 나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본다. 서른이 되면 우리 다시 만나자. 인디아.


yellow mango's sweet memories - 소년핑크


소년핑크 'yellow mango's sweet memories' 듣기 http://bit.ly/2ij5Zy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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