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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씨 Sep 17. 2022

스웨덴에선 ‘1일 1시나몬롤’이 국룰!

‘시나몬롤 데이'를 맞이하여


북유럽은 온통 시나몬롤해~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한국에선 즐기지 않던 시나몬롤을 자주 먹었다. 시나몬롤은 북유럽 사람들의 소울 푸드로, 정말이지 아무 데서고 맛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스웨덴어로 카넬불레(Kanelbullar), 또는 시나몬 번이라고도 하는 이 빵은 스웨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덴마크와 핀란드도 그에 못지않아서 빵집은 물론이고 동네 슈퍼마켓, 대형마트, 편의점, 역 구내매점, 호텔 조식뷔페, 카페 등등 어디서든 마주쳤다. (뒤져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마 집집마다 냉동실에 몇 개씩 구워둔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매년 10월 4일을 ‘시나몬롤 데이’로 지정해두고 집에서 시나몬롤을 만들어 먹을 만큼 시나몬롤에 진심인데, 오죽하면 관광청에서도 일 년에 일인당 360개 정도의 시나몬롤을 먹는 스웨덴에서는 ‘1일 1시나몬롤’을 한다고 홍보할 정도다.

시나몬롤은 이처럼 긴 반죽을 돌돌 말아서 만든다. 딸아이가 그린 그림.


별로 맛이 없지만 자꾸만 먹게 되는


북유럽식 시나몬롤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시나몬롤과 다른 큰 특징을 꼽자면 카르다멈이라는 독특한 향신료가 계피를 능가할 정도로 강한 향을 풍긴다는 것, 아이싱을 입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생각보다 퍽퍽하고 단맛이 적어서 확 끌리는 맛은 아니었다. 그래서 북유럽을 여행하며 그렇게 많은 시나몬롤을 먹었는데도 잊지 못할 정도로 맛있었던 경험은 없다. 시나몬롤보다 더 맛있는 빵이 훨씬 많았던 데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필명에서도 알 수 있듯 시큼하고 아무 맛이 안 나는 호밀빵파이기 때문에. (호밀빵에 대한 글도 조만간 올릴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빵을 나는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사 먹었다. 돌돌 말려 부풀어 오른 시나몬롤의 귀여운 모양, 표면에 살짝 바른 달걀물이 오븐에 구워져 만들어진 영롱한 갈색빛, 솔솔 뿌려진 하얗고 굵은 설탕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오늘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이곳 시나몬롤은 더 맛있어 보인다, 이곳 시나몬롤은 뭔가 달라 보인다, 같은 핑계를 붙이면서.



시나몬롤을 먹는 행위는 내가 지금 북유럽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내가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일종의 표식이었다. 이곳을 떠나면 결코 이것과 똑같은 맛을 느끼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것도 같다. 우리나라에서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백설기를 돌리고, 추석에 송편을 먹고, 시험 볼 땐 찹쌀떡을 먹는 일이 당연하듯이, 북유럽에서 시나몬롤을 먹는 일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덴마크 출신 작가 브론테 아우렐이 『리얼 스칸디나비아』에서 ‘시나몬롤을 맛있게 만드는 비결은 어이없겠지만 사랑이다’라고 이야기했듯이.


무덤에 시나몬롤 가루를 뿌린다구요?


스웨덴 소설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우리와 당신들』에서는 남자가 머리를 쿵 하며 바닥에 부딪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마치 ‘어린애가 바닷가에 떨어뜨린 시나몬 번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나는 소설 속에서 이처럼 그 나라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비유가 등장할 때 유난히 흥미롭다. 그의 또 다른 소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에서는 시나몬롤이 주인공 손녀와 할머니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시나몬 번을 좀 더 먹고 모노폴리를 좀 더 한다. 그래서 계속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라는 문장에서 시나몬롤(시나몬 번)이 얼마나 그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인지 느껴진다.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손녀는 할머니의 무덤 위에 굵은 시나몬 번 부스러기를 흩뿌린다.

예테보리에 있는 ‘세상에서 제일 큰 시나몬롤’을 파는 빵집. 얼굴만 한 시나몬롤이 무심한 듯 층층이 쌓여 있다.


커피  잔에 시나몬롤이 리운 계절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나몬롤이 커피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하루에 네댓 잔씩 커피를 들이켜기 때문에 매번 달콤한 케이크나 초콜릿을 곁들였다간 금세 엄청나게 살이 쪄버릴 게 틀림없다. 그래서 적당히 달콤하고 적당히 부드러운 이 시나몬롤이야말로 ‘딱 알맞은, 적당한’ 스웨덴인의 라곰(Lagom) 정신에 부합하는 디저트 빵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커피와 함께 먹은 시나몬롤이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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