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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씨 Jun 16. 2023

쌉쌀한 여름의 맛, 고야(ゴヤ)

오늘도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일본의 여름은 푸릇푸릇하고 쌉쌀한 '고야(ゴヤ)'의 계절이다. 톱니바퀴처럼 오돌토돌한 독특한 모양을 지닌 이 채소로 만든 요리를 우리나라에선 잘 먹어볼 수 없지만, 여름이 되면 일본인들의 밥상에 익숙하게 올라온다.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에서도 고야 요리가 등장한다. 창밖으로는 장맛비가 내리고, 주인공이 따뜻하게 삶은 국수 위에 초록빛 고야를 송송 썰어 올리는 장면은 일본의 여름 한때를 그대로 보여준다.    
 
 고야는 원래 오키나와산 채소로, 고야 요리 중에 가장 유명한 것도 오키나와 요리인 고야 참푸르(ゴヤチャンプル)다. 고야에 스팸과 두부를 넣고 볶는 것인데, 오사카 오기마치역 근처에 고야 참푸르를 아주 맛있게 하는 오키나와 주점이 있다. 나는 오키나와를 여행할 땐 정작 이 요리를 먹어보지 못했다가 오사카에서 처음 맛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고야는 우리나라에서 ‘여주’라고 한다. 실은 우리 집 근처에도 여주가 오이처럼 대롱대롱 열리는 작은 밭이 있고, 지역 농산물 마켓에도 매년 이맘때면 여주를 저렴하게 판매한다. 그래서 언젠가 일본에서 먹었던 맛을 기억하며 여주를 사다가 고야 참푸르에 도전해본 적도 있었지만 전혀 그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나름대로는 레시피대로 만들었다고 자부했는데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쓴맛이 나고 흐물거렸다. 오사카 주점에서 만든 것은 살짝 기분 좋을 정도의 쌉쌀한 맛과 적당한 식감이 있었다. 게다가 고야 참푸르는 오키나와 특산 맥주인 오리온 생맥주까지 함께 곁들여야 제맛이다. 집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서 일일이 구해 먹는다 해도 그 기분이 나지 않으면 정말이지 손해본 기분이다(생맥주는 구할 수도 없고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음식 맛에는 그 나라의 공기까지 포함된 것” 같다. 유튜브 4K 영상으로 언제 어느 때든 편안하게 방구석 세계여행을 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비행기 티켓을 검색해보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여행도 역시 공기가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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