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인생도, 내가 정말 원하는 대로
“어, 이게 뭐지? 속에서 딱딱한 게 만져지는데.”
어느 날 내 오른쪽 가슴에 멍울을 감지한 건 남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샤워할 때마다 나도 뭔가 만져졌던 것 같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줄곧 ‘내 몸은 건강해’라는 근거 없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던 탓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멍울을 발견한 그날조차 나는 밀려오는 불안감을 지우며 또다시 별일 아닐 거라고 단정했다. 남편은 하루빨리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지만, 나는 “오늘은 바빠서” “날씨가 추워서“ 등등의 이유를 들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 달이 다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마친 의사가 측은한 눈빛을 건네며 말했다. “흐음, 크기가 상당히 크거든요. 빠른 시일 내에 대학병원으로 가보셔야겠습니다.” 유방암이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검사, 입원, 수술, 여러 차례의 항암치료, 응급실행, 재입원, 재수술을 반복하면서 머리카락은 한 올도 남김없이 빠져버리고 몸은 계속 망가져 갔다. 암 덩어리는 떼어냈지만 치료로 인한 각종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시계를 빠르게 돌려 온갖 지병을 앓는 80대 노인이 된 것 같았다. 내 병실 침대 끝에 붙어있는 “36세, F”를 본 암병동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쯧쯧, 젊은 사람이 왜…”
나는 원래 여행책을 만드는 편집자이자 작가로, 암에 걸리기 전에는 일 년에 두어 번은 해외 출장을 다녀오곤 했다. 그러나 이제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었다. 약해진 체력도 걸림돌이었지만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그간 여행지에서 먹던 음식들은 죄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러다 치료한 지 일 년쯤 지나면서 제법 봐줄 만하게 머리카락이 자라났고, 몸도 조금씩 회복되어 가족끼리 국내 여행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즈음 나와 오랫동안 일을 해온 출판사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북유럽 가이드북을 내고 싶은데, 나는 북유럽에 가봐도 어디가 행복한 나라들이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너희 가족이라면 북유럽에서 무엇인가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가족끼리 편하게 여행한다 생각하고 가보면 좋겠는데, 어때? 할 수 있겠어?”
하아, 북유럽이라니.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북유럽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버킷리스트였다. 아름다운 자연과 산타클로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한 환상도 갖고 있었고, ‘행복한 복지국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내 책장에 가장 많이 꽂혀 있는 책은 북유럽 관련 서적들이었지만, 현실은 늘 일본이나 서유럽 같은 인기 관광국들의 책을 만들기만 바빠 북유럽 여행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북유럽행을 결심했다. “네, 할 수 있어요. 갈게요, 북유럽.”
그렇지만 출판사 대표는 내가 또다시 건강이 나빠질까 봐 매우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내가 한번 일에 뛰어들면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게 신신당부했다. “그래도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니까, 이번 작업은 부디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러나 책의 꼴을 구상하면서 나는 결국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 아무리 그래도 북유럽 가이드북이라니, 가이드북 편집자이자 작가의 자존심을 걸고 결코 쉽게 만들 수는 없었다. 며칠 동안 밤새 고민하며 이곳저곳 계획하다 보니 북유럽의 무수한 도시와 명소들이 일정을 빼곡하게 채우기 시작했다. “이번엔 예전 책들이랑 다를 테니까 걱정하지마.”라고 장담한 나를 믿고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보다 못해 울분을 토해냈다.
“미쳤어? 또 암 걸리려고 그래? 이번에 재발하면 그땐 정말 너 죽을 수도 있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남편은 출판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한데요, 아무래도 북유럽은 못 갈 거 같습니다. 아내가 이러다 또 건강을 망칠 것 같아요. 도저히 안 되겠어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아… 역시 그랬군요. 안 그래도 말해놓고 걱정이 많이 됐어요. 안 가도 돼요. 우리 그냥 없던 일로 해요.”
남편이 전화를 끊고 나자 나는 서러움에 복받쳐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렇게 한참을 시원하게 울어 젖히고 나니,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지나치게 수동적이었다. 무슨 일이든 누군가가 해달라고 하면 힘들어도 꾹 참으며 해내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은 일이어도 쉽게 포기했다. 그렇게 거절을 두려워하고 주체적이지 못한 성격이 암을 키운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번 북유럽 일도 마찬가지였다. 출판사 대표의 제안을 단번에 수락했다가, 남편이 뜯어말리니 또 쉽게 포기해버렸다. 몸만 어른일 뿐 하는 행동은 철부지 어린아이랑 똑같았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삶을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엔 변화가 필요했다. 돈이 얼마나 들든,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내가 진짜 가고 싶었던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북유럽으로 가야겠어. 출판사에서 제안했기 때문이 아니야. 그깟 가이드북이야 그냥 안 쓰고 말지. 이제 정말 누군가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내가 진짜 해보고 싶었던 여행을 하고 싶어.”
처음에 남편은 내 말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단호한 내 모습을 보며 조금씩 설득이 됐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원하는 여행이 무엇인지 종이에 차근차근 적었다.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였다.
무리하지 않는 여행
집처럼 편안한 여행
건강한 먹거리가 함께하는 여행
서로 존중하고 힘들면 쉬어가는 여행
언제 어디서든, 우리 가족이 함께인 여행
이것이 우리 부부가 종이에 써낸, 우리가 진정으로 바란 여행이었다. 여행의 ‘목적지’는 북유럽이지만, 그 ‘목적’은 북유럽 관광이 아니었다. 우리 여행의 진짜 목적은 나와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며 여행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우리의 북유럽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