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소모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가족여행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기쁘고 설레는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여행이란 게 항상 재밌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면 참 좋으련만 날씨나 장소 이동에 따라 피치 못할 상황들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솔직담백한 아이들은 “나 힘들어!” “귀찮아~ 가기 싫어!” 같은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어른들은 속으론 부글부글하더라도 상대방을 고려하여 내뱉지 않는 부정의 단어들을 아이들은 여과 없이 쏟아낸다. 맘속에선 ‘엄마(아빠)도 힘든데 너까지 이럴 거냐?’라는 생각이 꿈틀대지만,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다. 행복하려고 떠난 가족여행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 떠난 가족여행에서 “내가 너랑 다시는 여행 가나 보자!”라는 소리가 나오는 일보다 더 안타까운 건 없다. 이번엔 장기간 북유럽 여행을 비롯해 아이와 함께했던 수많은 길 위에서 겪은 우리 부부의 시행착오를 통해, 아이와 여행할 때 필요한 대화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이와 여행하며 이 말을 듣지 않은 부모가 과연 있을까.(혹시 있다면 정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평소 아이와 산책을 즐기는 우리 부부도 북유럽 여행 도중 이 말을 피해 갈 순 없었다. 그런데 사실 아이가 이 말을 내뱉을 땐 정말 몸이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단지 재미가 없고 지루해서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힘든 줄 알고 업기라도 했다가는 내 몸이 두 배로 더 고생한다. 방금까지 “힘들어서 못 걷겠어”라고 주저앉던 아이가 놀이터를 발견하고는 전력 질주해서 뛰어갈 땐 정말 ‘웃픈’ 심정이다.
“많이 힘들구나” 공감과 칭찬, 여행의 가치 공유하기
아이가 힘들다고 할 때 가장 먼저 해주어야 할 대답은 공감이다. 충분히 공감해주지 않고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라든지, “힘들어도 좀 참아”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도 실망을 안겨주는 말이지만, 부모에게도 ‘힘듦’이 고스란히 전염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많이 힘들지? 엄마도 힘든데 넌 오죽하겠니.” “너의 작은 다리로 이만큼이나 함께 걸어줘서 정말 고마워!” “벌써 여기까지 왔다니 대단해!” 하며 아이에게 칭찬과 긍정의 에너지를 듬뿍 전해준다. 그다음에 할 일은 이 여행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왜 우리가 이곳에 왔으며, 이 어려움을 벗어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이와도 내 생각을 공유하면서 힘을 내야 할 명분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일은 아이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일이다. “엄마는 ~~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떤 생각이 드니? 어떻게 하고 싶어?”
아이도 어른과 똑같이 고민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존재이므로, 아이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존중해주는 것. 평소에도 중요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는 더욱 필요한 일이다.
이 말은 “엄마, 힘들어”와 동시에 등장할 때도 있고, 따로 등장할 때도 있다. 이때 아이가 정말 단순히 목적지까지의 거리와 소요시간이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를 먼저 알아본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아직 멀었어”라든가 “조금만 더 가면 돼”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아이의 질문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불성실한 대답이다.
아이와도 최대한 자세하게 정보 공유하기
아이가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는 나이라면, (“언제까지 가야 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다 알아듣는 나이일 것이다) 앞으로 목적지까지 어떻게 이동하며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차근차근 알려준다. 물론 자세히 알려줬는데도 5분 뒤에 아이가 또 물어올 수도 있다. 그러면 “아까 얘기 했잖아”라고 하지 말고 또 알려준다. 아이한테 교통 정보는 그리 중요한 영역이 아니므로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이니까. 스마트폰 지도를 보여주며 이동 경로를 눈으로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른들도 모르는 길을 무작정 걸으라고 하면 가기 싫어진다. 여행 중 우리는 대체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얼마나 걸리는지를 정확히 알고 이동하지만 아이와 공유하는 걸 종종 잊곤 한다. 아이도 알 권리가 있다.
아이가 여행하며 목마르다고 말하는 건 조금 큰 일이다. 우리 몸은 수분이 부족하더라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데, 목마르다고 내뱉을 정도면 이미 수분 부족인 채로 꽤 오랜 시간이 지속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행 중에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수분 보충을 자주 해줘야 한다. 북유럽 여행 초반에는 생수 가격이 워낙 비싸서 물을 자주 사 먹지 못해서 아이 입에서 이런 말이 자주 나왔다. 그런데 사실 북유럽 사람들은 화장실 세면대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물을 마신다. 수돗물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처음엔 꺼려졌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흐른 뒤부터는 공공화장실이나 놀이터, 쇼핑몰에 가서 물을 마셨다. 물론 호텔에서 생수병에 물을 가득 담아 나오는 건 기본. 아이 입에서 “목 말라~”라는 말은 더운 날 야외활동을 할 때 쉽게 나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지금도 나는 이 말이 아이 입에서 나오면 반성한다. 아, 물 좀 많이 챙겨올걸, 제때 줄걸!
아이가 간식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할 땐 실제로 목이 말라서인 경우가 많았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그리 똑똑하지 못해서 수분이 부족한 상황을 허기가 진다는 것으로 잘못 인식한다고 한다. 목마르다는 생각은 그보다 나중에 든다.
북유럽 여행을 하던 때 아이는 일곱 살이었는데, 목마르거나 배고프다고 얘기하기 이전에 항상 간식이 먹고 싶다는 얘기를 먼저 했다. 자칫 ‘피곤해서 당 떨어졌나보네’라며 초콜릿이나 젤리를 건네기 쉬운데, 필요 이상으로 인스턴트 과자류를 주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여행 중 아이에게 우선 물부터 마시게 했다. 이때 아이에게 “간식은 무슨~ 물이나 마셔”라고 말하지 말고, 역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준다. 물을 한 컵 마시고도 여전히 간식이 먹고 싶다고 말할 때를 대비해 가방에는 과일이나 비스킷을 간단히 챙겨온다. 그런 것을 먹고 나서도 여전히 간식이 당긴다고 하면, 물론 그때는 간식을 주지만. 사실 무리하게 등산을 하는 등 심하게 체력을 소진하는 때가 아니면 대체로 과자나 젤리 없이도 잘 넘어갔다.
이 말은 우리 가족의 여행에서는 사실 잘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많은 가족여행에서 자주 등장하기에 넣어봤다. 보통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장소에 대해 사전에 아이와 의견 공유가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비록 늦었지만 뒤늦게라도 아이와 생각을 나누고 충분히 설명해야할 것이다. 그랬는데도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가지 않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을 수 있다. 예전에 로마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한 한인민박 도미토리룸에서 묵고 있었는데, 초등학생 두 딸과 여행온 엄마가 아침부터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엄마는 오전에 출발하는 버스 투어를 예약해두었는데, 아이가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상황이었다. 아마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랑 최대한 편안하게 명소를 둘러보려고 비싼 티켓을 예약한 것이었겠지만, 아이에게는 이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 엄마 입에서 드디어 그 말이 나왔다.
“내가 너랑 다시는 여행 가나 보자!”
아이가 힘들다, 가기 싫다,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행 중에 아이의 불평을 들었을 땐 혹시 내가 욕심이 나서 아이의 컨디션이나 평소 패턴, 취향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내 생각을 전하는 것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중간 점검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아이와, 배우자와 낯선 길 위에서 대화를 통해 생각을 나누는 일은 관광지 몇 군데를 더 돌아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가족이 모두 다 같이 즐거워지고 싶어서 떠난 여행, 서로에게 좋은 기억만 남을 수 있도록. 부정의 말과 감정들은 여행지에 휘휘~ 날려버리고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