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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씨 Jul 08. 2022

핀란드인이 행복한 이유

별 볼 일 없어도 별일은 없어, 괜찮아

◇ 핀란드 거리에서 찾은 행복의 실마리


핀란드에서는 도시를 걸을 때 유난히 눈이 편안했다. 거리의 상점과 간판들이 무척 수수했기 때문이다. 감각적이고 우아하며 시선을 사로잡는 인테리어나 상호는 잘 찾아보기 어려웠다. 레스토랑 간판에는 RAVINTOLA(레스토랑), 카페 간판에는 KAHVI(커피)만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고, 상점 간판에는 KAUPPA(상점)를 써놓은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그런 간판들을 발견할 때면 어쩐지 답답한 마음이 들어 ‘그래서 진짜 상호가 뭔데?’ 하고 두리번거리곤 했다.


대체 간판에 꽃가게, 라고만 써놔도 장사가 될 거라는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우선 내가 가장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핀란드가 인구밀도가 낮고 상점 수도 많지 않아서 동종업체끼리 치열하게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나도 인구밀도가 낮고 딱 필요한 만큼의 가게들만 들어선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기에 이러한 핀란드의 차분한 분위기를 어느 정도 공감한다. 우리 동네 풍경을 바라볼 때도 핀란드만큼 눈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만 누가 여행하겠다고 일부러 찾아오는 곳은 아니다. 핀란드나 우리 동네나 잘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영 사는 게 심심해 보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어느 상점. 간판에 그냥 '꽃가게'라고 쓰여 있다. (핀란드어로 KUKKA는 꽃, KAUPPA는 상점이다.)
칙칙하고 우중충한 느낌의 핀란드 거리 풍경. 하늘도 회색빛이다. 『너만큼 다정한 북유럽』중에서


◇ 5년 연속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 핀란드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에서 발표한 '2022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핀란드가 또다시 1위를 차지했다(우리나라는 59위). 주목할 것은 핀란드가 5년 연속 1위라는 데 있다. 핀란드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솔직히 좀 믿기 어려웠다. 아니, 인정하기 싫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지도 모른다. 나는 혹시 핀란드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행복을 강요받고 있지는 않은가, 더 나은 삶을 경험하지 못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예능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핀란드 편에서 핀란드 사람들이 서울 관광을 즐기며 환호하는 것을 보며 ‘거 봐, 여기엔 좋은 게 더 많지.’라는 조금 오만한 생각도 했더랬다.

그렇지만 사실 유엔에서 오랫동안 해오고 있는 이 조사는 국내총생산,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자유, 부정부패, 관용 등 6가지 항목을 기준 삼아 다방면으로 산출한 것이기 때문에 행여 ‘나는 세상 행복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혀있다고 한들 종국엔 들통이 날 수밖에 없는 꽤 신용할 만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비교와 경쟁보다는 존중과 공감


더 많은 돈을 가지는 것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 결과에서 입증되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원하는 것을 사 모은다고 해도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려는 의식이 강하게 내재해 있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내가 오늘 100만 원을 벌었는데 내 친구가 200만 원을 벌었다고 연락이 오면 돌연 우울해지기 쉽다. 내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라고 해도 세계적인 기업들과 비교하고자 한다면 나는 더 분발해야 한다. 이는 구독자 수나 팔로워 수에도 비교할 수 있겠다. 10만 구독자라는 영예를 달성해 실버 버튼까지 받았지만, 50만, 100만 유튜버 앞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이고 조바심이 난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 남보다 특별하고 돋보일 수 있도록 더,더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의식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개인의 행복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을까. 한국에 돌아와 여행 에세이 <너만큼 다정한 북유럽>을 준비하고 써 내려가면서 나는 핀란드 행복의 실마리를 그들이 가진 삶의 방식에서 되짚어보았다. 춥고 척박한 땅에서 외부의 침략을 어렵게 막아내며 살아온 핀란드 사람들에겐 우리는 모두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평등의식, 부자든 가난한 이든 누구나 부족한 점도 배울 점도 있고 어려울 때는 서로 도와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이 삶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남보다 앞서고 눈에 띄는 방법을 익히기보다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고요히 살아가기를 택한다. 그런 의식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주리라.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법, 타인을 혐오하고 시기하기보다는 공감하고 존중하는 법, 그로 인해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키워내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 네가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나는 별일 없이 잘 사니까


무지무지 심심한 핀란드 거리,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단순한 가게 간판들은 단지 인구밀도가 낮고 상권이 덜 발달했기 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사실 꽃가게를 꽃가게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르겠는가. 다른 가게도 꽃가게라고 한들 무슨 상관이람. 그 가게 주인도 나처럼 꽃을 파나보지. 하루하루 별 볼 일은 없어도 별일 없이 잘 사는 핀란드 사람들을 생각하면 장기하의 노래가 떠오른다.


부러우니까 자랑을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워지고, 부러워지고, 부러워지고

하지만 너무 부러울테니까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무민월드에서 만난 무민. 무민은 자연 속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숲속 친구들과 사이좋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토베 얀손은  주변 지인들을 떠올리며 동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눠본다. 나는 오늘 어떤 불행한 감정을 느꼈는지. 혹시 누군가와 비교하고 나를 채찍질하지는 않았는지. 이를테면 브런치 홈에 내 글이 뜨지 않아서, 브런치 조회수가 늘지 않았다고, 인스타 팔로워가 늘지 않는다고 조바심 내진 않았는지. 그런 잡념 따위는 떨쳐버리고 이렇게 키보드를 두들겨대며 생각을 글로 옮겨적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만을 온전히 즐기려 한다. 자랑하고 싶지도, 부럽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작은 실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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