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육 남매는 오랜 시간 산소 가는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막내인 나는 특히나 산소의 위치도 몰랐으며, 지금껏 그곳을 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십이 된 지금까지 부모님 산소에 방문한 건 딱 세 번이다. 결혼할 때, 묘 이장할 때, 그리고 얼마 전. 내 마음에 자리 잡은 복수심이었을까? 낳아만 놓고 가버리셨다는 원망. 평생을 부모 없는 아이로 성장하게 만들었다는 분노. 죽을병에 걸려 놓고 왜 나를 낳았는지 하는 책망 같은 게 생각보다 깊었던 게 아닐까 싶다. 깨닫지 못한 채 살아왔지만, 깜깜한 무의식 속 어느 구석엔 그런 원망과 분노 같은 게 쌓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산소는 더웠다. 잠깐 머물기에도 뜨거운 햇살과 무릎까지 높이 자란 풀들이 묘지를 품고 있었다. 낫이라도 가져올 걸 하다가 더위 속에 긴 풀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 오히려 바짝 깎인 묘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준비해 간 술을 종이컵에 따라 올려드렸다. 생전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지만, 어머니는 잘 드시지 못했다는데 왜 똑같이 술을 올려야 하는 건지. 나의 죽음 앞에선 술 대신 시원한 어름물을 올려줬으면 했다. 부모님의 삶을 증명해 주는 묘비 앞에서 우리는 농담도 나누고 기도 비슷한 말도 늘어놓았다. 돌아가신 두 분이 신이 된 것도 아닌데 가족들 무탈하게 해 달라는 둥, 누군가의 건강을 지켜달라는 둥 하면서 말이다. <작별 인사>의 선이의 말처럼 사람이 죽은 후 우주의 정신으로 되돌아간다면, 그렇게 모인 강력한 에너지가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할지도 모르겠다. 기도를 마냥 우습게 볼일은 아니다.
짧은 성묘를 끝내고, 태어나고 자란 집터 앞을 걸어봤다. 43년 만이었다. 두 발로 그 땅을 다시 밟는데 사십삼 년이 걸릴 줄 누가 알았을까. 집은 오래전에 허물어지고 밭이 되었는데 그 땅 위에도 햇살은 강렬했다. 주변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오래되고 낡은 집들만 남은 시골 마을은 밝은 대낮인데도 조금 으스스해 보였다. 우리 집이 있던 터 앞에 섰을 때, 기분이 묘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친숙함과 기억을 떠올려 보려는 안간힘이 겹쳐져 내가 살아왔던 흔적과 어떤 기운들이 나에게 전해오는 것 같았다. 언니들에겐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오래된 나의 일부는 그곳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사십구 년 전엔 어머니를 그리고 사십삼 년 전엔 아버지를 삼켜버린 집터. 추억에 남기겠다며 그곳을 찍어왔지만, 이내 음산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 사진을 지웠다. 우리가 떠나온 후 많은 이웃들이 그곳을 등지고 다른 곳으로 삶을 옮겼다. 남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르는 분들이고 그들마저도 낡고 오래된 집에서 근근이 삶을 이거 가는 것 같았다. 사십 삼 년간 서울과 인천의 눈부신 발전을 떠올린다면, 그곳은 분명 버려진 땅이었다.
가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까? 꽤 넓었던 우리 집은 작고 초라한 밭이 되었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길은 아직도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었다. 우물은 사라지고 이웃들도 없는 나의 고향은 일곱 살 이전의 추억 속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지도. 내 기억은 덧칠해져 버렸고, 이제 그곳을 떠오르면 전과는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어떤 것들은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부모님의 죽음 이후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너무 가난했던 우리는 안간힘을 쓰며 삶을 버텨냈다. 누구의 삶도 평탄치 못했다. 그날 하루 나는 좀 앓았다. 밭이 된 그 땅이 미웠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삼킨 미운땅에 심어진 나무들이 싫었다. 그 미움이 잠을 깨우고 새벽녘에 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편의 팔을 잡고 식을 땀을 흘렸다. 그마저도 부족해 거실에 나와 화장실 불을 켰다. 빛이 있어야 했기에. 버티다 보니 다행히도 아침이 왔고, 바쁜 일상이 이어졌고 내 삶으로 금방 되돌아왔다. 내 미움과 두려움이 커지기엔 사십삼 년은 충분히 길고 먼 시간이구나 한다.
아마, 다시 고향 마을을 가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그곳을 떠나 온 건,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아버지가 그 집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이란 가정을 걸고 그랬다면, 두 분 모두 지금까지 무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을 내려보곤 했다. 그렇게 우리의 불행을 집터에 묻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