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인데 특별한 게 없다.

by 쓰는 사람 효주

내 나이 오십이 된다면.. 저기 저 파마머리 아줌마처럼 되는 거겠지? 아 근데 왜 저 아줌마처럼 되고 싶지 않은 걸까? 게다가 내가 저렇게 변한다는 건 믿을 수가 없단 말이지.

오십이란 나이가 오긴 오겠지. 지금이 열다섯 살이니까. 오십이 되려면 자그마치 삼십오 년이나 남았네. 너무 먼 미래다. 어쩌면 나에게 오십이 오지 않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벌써 다 지나고 나는 지금 딱 오십이다. 오십에 쓰는 일기라고 제목을 지어놓고 글을 쓰는데 도통 이게 오십에 쓰는 일기인지 사십에 쓰는 일기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특별한 게 없다. 삼십오 년이 어떻게 지나가버렸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분명하게 다 지나버렸고 다 겪어버렸고 오십이 된 내가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십 대!!! 당신! 오십이 안 올 거 같죠? 옵니다.. 와요. 오고 말아요~~) 그때와 다른 점이라곤 뱃살이 두둑해졌고 열다섯에 봤던 아줌마랑 똑같은 파마머리를 하고 있으며, 시력이 안 좋아져서 안경을 썼고(삼십에 라식을 했는데 마흔 후반부터 노환이 와서 다시 안경을 썼다.) 결혼을 해 아들이 두 명 있고, 못생긴 남편이랑 우유대리점을 하며 먹고살고 있다는 점뿐이다. (꽤나 많이 변한 건가?) 열다섯 살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는데 일단 키가 작다는 것, 머리숱이 여전히 많아 미용실 주인장들이 힘들어한다는 것, 발사이즈가 220이라는 것, 장난치고 농담 따먹기를 좋아하며, 누군가를 웃기는 일을 사는 낙으로 여기며 산다는 거다. 게다가 여전히 축농증이 때문에 코팝이 자주 끼고, 체육을 못하며, 악기는 피리밖에 불 줄 모르고, 웃음소리가 크다는 것도 똑같다.


사실 내가 꿈꾸던 오십은 이런 게 아니었다. 오십정도 되면 삶의 지혜 같은 게 엄청 쌓이고, 경험도 풍부해져 웬만한 일에는 끄덕 안 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이 넉넉하니 있고 먹고사는 일에 온 시간을 다 쓰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인간이 될 줄 알았다. 우아한 원피스 자락을 휘날리며 테라스가 있는 멋진 장소에서 차를 마시며 자연의 풍광을 감상하는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아니 그런 오십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다 아니라고 쳐도 딱 한 가지 오십이면 삶의 여유정도는 생길 줄 알았는데 웬걸 키워야 할 아들이 아직 두 명이나 있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신경 써야 하는 일이며, 돈 벌어먹고사는 일까지. 할 일은 늘 쌓여 있고, 책임져야 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주름살이 하나 둘 늘어나고 이제 서서히 죽음을 생각해야 할 오십인데 삶은 여전히 체직질만 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을까.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지금부터 삼십 년 후인 팔십을 그려보는 거다. 그래 팔십. 그때는 분명 지금과 다를 테다. 아이들은 다 커 제갈길을 갈 테지. 신체적인 건강이 예전만큼 안되니 일에 손을 놓았을 테고, 책임져야 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에서 하나 둘 벗어나 있을 테다. 어쩜 그때쯤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의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근데 그런 내가 요양병원에 누워 누군가의 손길에 의지해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건 아닐까. (흑흑 슬프다.) 오십이 내가 바란 오십이 아니듯이 팔십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역시, 삶의 특별함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만들어야 하나보다. 오십이 가기 전 오십에 이루고 싶은 일들을 생각해 놓자. 며칠 전에 읽은 신경숙 작가의 <요가 다녀왔습니다.>를 통해 요가가 배우고 싶어 졌는데 생각만 하지 말고 도전해 봐야겠다. 오백 권의 독서기록장을 정리하고 모아 독서 관련 브런치 연재북도 시작해야지. 그래서 오십 대 해낸 일들로 달라진 나의 육십을 만나보고 싶다. 열다섯 살의 나와 오십의 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변화를 두려워하고 용기 내지 못했다는 증거일 테다.(그걸 이렇게 글을 쓰며 깨닫는다.)




특별한 게 없는 오십에 특별한 용기를 내보며 남은 오십의 시간들을 달려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