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라는 알람이 왔다.

by 쓰는 사람 효주

두 번 정도.


처음엔 무시했다. 도통 글을 쓸만한 에너지가 없었으므로. 그러니 매일 조금이라도 끄적였던 지난 시간 동안 나는 건강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아프니 글도 책도 자꾸만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좀 멍하니 있거나 무력해지면 영상에 의지했다. 마음이 자꾸만 그러지 말라고 나를 타일렀지만, 멈추지 못했다.


두 번째 알람은 어제 왔다.


글을 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그래서 오랜만에 들어와 봤다. 구독자가 두 명 줄어 있었다. 물론 개의치 않는다. 이곳에서 조용히 지내는 게 목적이니까. 역시나 글이 써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마음의 병을 글로 치유했다는데 어째서 글은 자꾸 후퇴하고 책은 자꾸 되새김질하는지. 친구를 만나 코스모스 길을 걷고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고 돌아왔는데 집에 오자마자 피곤이 밀려왔다.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가 시작되는 건가.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읽었다.

슬픔이 너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쓸데없는 근심이 너의 날들을 뒤흔들게 내버려 두지 말라. 책과 사랑하는 이의 입술을 풀밭의 향기를 저버리지 말라.라는 그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요? 하지 말라라는 말은 얼마나 쉬운지. 어떻게가 없는 충고는 또 얼마나 무의미한지.


차라리 뭐든 하라는 말이 더 좋을 것 같다. 걸어라 뛰어라 소리치라 웃어라 움직여라 요리해라 청소해라 한숨쉬라.... 무엇이든 하라라는 쪽이 지금 나에게 더 필요한 위로가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꼼짝 마. 영상에 코를 박고 하루 종일 식탁에 앉아 있어. 무기력이 너를 지배하도록. 그렇게 보낸 너를 너가 미워하도록. 악마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다. 글을 쓰고 있으니까. 뭐든 하고 있으니까.


조금 있으면 가족들이 돌아올 테고 나는 저녁으로 부침개를 생각하고 있다. 오징어와 부추를 넣을 계획이지만 영어 학원에 가기 전 둘째가 김치를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반드시 씻지 않은 빨간 김치를 넣어야 한다는 조건도 추가하면서. 둘째의 그런 요구가 좋았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됨으로. 너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나에게 놓인 책임 하나를 내려놓는 기분.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고 한동안 나는 더이상 명령받지 않은 일상이 힘들었다. 이걸 끝내면 그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대거나, 국어 영어 사회 과학 공부에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되는 이상한 하루하루들. 받아본 적 없던 자유가 주어지자 그것을 어떻게 쓸 줄 몰라 난감했던 나. 차라리 이거 다음에 저걸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지금이 딱 스무 살의 나 같다.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은 일상이 너무 익숙해지고 말았지만, 지금쯤 자기 삶을 잘 살아낸 누군가가 다가와 " 이봐 친구, 지금부터 이걸 해봐"라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다. 간섭과 충고가 그리도 싫었으면서 그것을 애써 그리워한다니.


문득 한 가지 할 일이 떠올랐다.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를 필사하는 것. 언젠가 유시민 작가님이 토지를 필사하며 문장력을 키우셨다고 했지. 무력한 시간을 그것으로 채운다면 해보다는 득이 될 듯싶다.


다음번에도 글 발행 알람이 와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뭐라도 하라고 시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복이다. AI가 보낸 알람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