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쓰게 하는 것들

삶이 나를 쓰게 한다.

by 쓰는 사람 효주

쓰고 싶다는 마음, 써야 한다는 의무감, 쓰게 만드는 책과 문장들, 누군가의 질문, 내 안에 퍼지는 의문들, 삶이 주는 숙제들, 맑고 청명한 하늘, 끝없이 피고 지는 꽃들, 서 있는 거리의 나무들, 바람이 전해주는 오래전 나의 모습, 심심해하는 손가락, 자판을 칠 때 나는 다닥다닥 소리, 빠르게 움직이는 손놀림, 가슴을 후려치는 사건, 기억하고 싶은 과거, 남겨두고 싶은 추억, 보고 싶은 친구, 그리운 아버지, 너무 일찍 돌아가신 엄마, 여자이고 싶어 하는 큰언니, 로또 분석에 빠진 둘째 언니, 직업선택의 달인 셋째 언니, 산 타는 배불둑이 아저씨 오빠, 눈물 많은 막내언니, 아토피가 있는 큰애, 허벌라게 말 안 듣는 둘째,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 화해하는 신랑, 여전히 어려운 시부모님과 시동생, 정의롭지 않은 세상의 일들, 권력자들의 약자 괴롭힘, 10년간 운영한 대리점, 지인들과 나눴던 전화 통화, 슬픈 이야기, 기쁜 이야기, 미칠 듯이 화가 나는 일, 상처받았던 순간, 눈물로 기록된 시간, 속의 한 문장, 머리를 치는 글, 새로운 관점의 책들, 흥미진진한 소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에세이들, 말도 안 되게 지루한 책들, 재미없는 이야기, 처음 만나는 작가의 문체, 다른 책을 소개해주는 독서, 도서관의 냄새, 커피숍의 빈자리, 제잘 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 흘러나오는 음악, 다 마셔가는 차와 빈 찻잔, 혼자 앉아 있는 사람, 여럿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바람이 부는 이유, 계절이 변화는 원리, 별이 전하는 이야기,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범죄자의 심리, 사건의 구성과 결말, 사이코패스의 머릿속, 경찰관의 수사, 느릿느릿 가는 시간,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 말 많은 사람들의 침묵,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들, 애쓰는 모습, 누군가의 친절, 지하철에서 만난 변태남, 선생님의 냉대, 친구들과의 추억........


이 모든 것들을 쓰다 보면 끝이 없다. 그리고 결론은 하나로 연결된다.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은 결국 "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들이다." 살아있기에 쓴다. 이 삶을 살고 있기에 쓴다. 그렇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다.

거룩하고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오래전에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훨씬 이른 나이에 쓰기 시작했을 것이고 더 많은 글을 써냈을 것이다. 그것들을 글로 전부 토해내고 또 토해내서 마침내는 내가 원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늦었을지라도 써내는 일. 내 안의 것을 토해내는 이 작업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