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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규 Dec 30. 2022

김병규의 [소비 연비] 이야기 (12)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8 "불편함을 피하지 마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8 "불편함을 피하지 마라"


#불편한 것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이전 글에서 집에 책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책상 없이 작은 접이식 테이블을 놓고 바닥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옛날 사람들처럼 책상보다 좌식 생활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평생 책상을 사용해 왔고, 지금도 책상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바닥에 앉아서 일을 하면 일어서야 할 때마다 무척 힘이 듭니다. 책상이 없다 보니 물건을 정리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제 주변에 각종 서류들과 책이 늘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책상을 새로 구입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불편함에 익숙해졌기도 했고, 불편함이 주는 매력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피하려고 합니다. 생활을 하다가 불편함이 느껴지면 사람들은 불편함을 없애주는 제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의자보다 더 편한 의자를 가지고 싶어 하고, 집안 정리나 청소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제품들을 구입하고 싶어 하게 됩니다. 그런데 동시에 사람은 불편함에 대해서 뛰어난 적응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서 더 이상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때 우리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서 소비를 하고, 어떤 때는 불편함에 쉽게 적응하게 되는 것일까요? 


사람이 불편함을 피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적응하게 되는 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해결책의 존재입니다. 아무리 사용하기 불편한 물건이더라도 다른 대안이 없으면 사람의 마음은 적응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안의 존재를 알고 있고, 대안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으면 사람의 마음은 적응을 거부하게 됩니다. 오히려 불편함에 민감해지게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빨리 그 대안을 손에 넣도록 합니다. 


30년 전의 삶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불편한 삶이었죠. 전화를 하기 위해서는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고, 약속 장소에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물건을 구입하는 일도, 필요한 정보를 얻는 일도 모두 불편했습니다. 지금 기준에서 생각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불편한 삶을 견디며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그다지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인식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이죠. 


대안이 없으면 사람들은 불편함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몸은 불편함을 느껴도 사람의 마음은 불편함에 쉽게 적응하게 됩니다. 지금도 우리 삶에 불편함을 주는 것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매일 스마트폰을 충전해야 하는 것도 불편하고,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다닐 때 충전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불편합니다. 무거운 노트북의 무게도 불편하고, 며칠에 한 번씩 자동차에 주유를 하거나 충전을 하는 일도 불편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불편함을 크게 인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아직은 마땅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이런 불편함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스마트폰을 충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너무 큰 불편함과 고통이 느껴지게 되고,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고통을 참고 살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이 가지는 중요한 문제는 불편함을 줄여주거나 없애주는 대안들의 존재에 너무 쉽게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기술적 발전에 시간이 걸리는 하이테크 제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제품에 있어서 사람들의 불편함을 줄여주는 대안은 존재합니다. 의자도 자신이 사용하는 것보다 더 편한 의자는 분명 존재하고, 침대도 자신의 것보다 더 편한 침대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이런 대안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게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배너 광고, 유튜브 동영상,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서 이들의 존재에 자주 노출됩니다. 사람들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아이디어 제품들을 소개하는 콘텐츠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런 제품들의 존재를 알게 되면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이 가진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시작합니다. 광고에서 매우 편안해 보이는 안락의자를 본 순간 갑자기 자신이 가진 의자에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대안이 없을 때는 환경에 쉽게 적응하던 마음이 대안을 알게 된 순간부터 적응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 대안들을 손에 넣으라고 말합니다. 마음속에 욕망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불편함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제품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제품들이 실제로 불편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편함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이 없어지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게 되지만 이 불편함이 다른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쉽게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불편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광고나 콘텐츠를 통해서 새로운 제품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은 불편함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불편함을 없애주는 대안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다양한 아이디어 제품들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하이테크 신제품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불편함을 견디기 어렵게 됩니다. 자신은 삶에 꼭 필요한 제품을 구입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불편함 때문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집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런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요즘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집을 구경하기가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심풀이나 제품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구경하게 됩니다. 구경하는 것 자체가 재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짜로 얻은 재미에는 대가가 따르게 됩니다. 구경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자신이 가진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소비에 대한 욕구가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집보다 더 편리해 보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거나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가구나 제품을 가진 제품을 보게 되면 자신의 삶이 갑자치 무척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집들의 존재를 모를 때는 자신의 집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집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평소 신제품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구경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대안의 존재를 모르면 자신이 가진 것들에 훨씬 더 만족하게 됩니다. 


설령 대안의 존재를 알더라도 자신이 경험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들에 따르면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UC 버클리 대학의 연구진은 실험용 쥐에게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주고서 뇌의 변화를 관찰하였는데, 스트레스가 새로운 뇌 세포가 자라게 하고, 쥐들의 과제 수행 능력도 향상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적당한 양의 스트레스가 감각을 일깨우고 면역력을 높인다는  것도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삶이 너무 편안한 것보다는 적당한 수준의 불편함이 있는 삶이 더 나을 수 있는 것이죠. 편안한 삶은 소비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을 편안한 상태에 있게 하고서 제품을 평가하게 하였더니, 편안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같은 제품의 가치를 더 크게 생각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편안한 상태에 있으면 사람들이 제품의 비용이나 단점은 잘 보지 못하고 좋은 점만 고려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파나 침대 위에 편안하게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많은 소비를 유발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삶에서 경험하는 불편함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몸에 큰 고통을 주거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라면 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쉽게 적응할만한 수준의 불편함입니다. 그리고 이런 불편함은 사람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삶에서 불편함을 크게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최근에 구경한 제품 때문일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죠. 굳이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들을 모두 해소시키며 살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 #8 불편함을 피하지 마라


사람들이 삶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의 삶이 실제로 불편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편함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은 자기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불편함을 굳이 없애려고 하지 마라. 불편한 삶이 주는 즐거움과 혜택을 누리며 살자.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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